군인황제 시대의 종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3세기의 위기라고 불리는 로마 제국의 혼란기에는 약 50년 동안 무려 25명의 황제가 요절하거나 살해되는 등, 군인황제의 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혼란을 종식시킨 마지막 군인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광대한 로마 제국을 한 명의 황제의 힘으로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두 명의 정통 황제를 세우는 이두 통치 체제(디아르키아)를 구성해 제국을 분할 통치했지만, 그마저도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정통 황제(아우구스투스) 아래에 부황제(카이사르)를 추가로 임명하고, 네 명의 황제에 의한 사분할 통치(테트라르키아)를 시작하게 됩니다.
네 황제에 의한 통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치세의 테트라르키아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 동방 정통 황제(시리아 담당): 디오클레티아누스
- 동방 부황제(다뉴브 강 방면 담당): 갈레리우스
- 서방 정통 황제(북아프리카·로마 담당): 막시미아누스
- 서방 부황제(라인 강 방면 담당):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당시 로마는 동쪽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북쪽에서는 게르만 민족이 라인 강과 다뉴브 강을 넘어 영토를 침범하고 있었으며, 조직화된 산적들도 횡행하는 상태였습니다.
특히 전직 군단 지휘관급 인물들이 산적단을 조직하는 경우조차 있었기 때문에, 치안 회복과 외적에 대한 억제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도미나투스(전제 군주제) 체제에서는 원수정 시대의 지방 자치 사상이 버려지고, 황제의 권력, 즉 중앙집권 체제로 이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것은 대규모 관료제였습니다.
속주와 총독이라는 기존 개념은 폐기되었고, 원로원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또한 거대한 관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 때문에 세율을 크게 인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치안이 크게 회복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지에 둥지를 튼 산적과 해적들이 진압되었고, 실제로 테트라르키아가 시작된 이후 이민족의 로마 영토 침입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테트라르키아의 붕괴와 내전
사분할 통치라고는 하지만, 그 실체는 어디까지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전제 통치였습니다. 이러한 대개혁이 단번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실행력과 카리스마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이 이미 달성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제위에서 물러나 은거합니다. 현직 황제가 스스로 물러난 것은 로마 황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은거 후의 테트라르키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동방 정통 황제: 갈레리우스
- 동방 부황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 서방 정통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 서방 부황제: 세베루스
그러나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테트라르키아와 도미나투스 체제에 불만을 품은 로마 시민과 원로원은, 황제의 피를 이었지만 후계자로 지명받지 못한 막센티우스와 연계하여 그의 아버지 막시미아누스를 옹립했습니다. 또한 서방 정통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병사하자,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도 곧바로 서방의 로마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서열 1위였던 갈레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를 부황제로 승인하는 한편, 서방 부황제였던 세베루스를 정통 황제로 승격시켜 선대 황제 막시미아누스 토벌에 나섭니다.
그러나 세베루스는 막시미아누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진격하여 먼저 막시미아누스를 격파하고, 이어서 그의 아들 막센티우스를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격파했습니다. 막센티우스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남은 황제 리키니우스와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에서 회담을 가졌고, 여기서 유명한 '밀라노 칙령'이 발표됩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이 칙령은 로마사는 물론 세계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원후 324년, 콘스탄티누스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리키니우스마저 제거하고 로마 제국 유일의 황제가 됩니다.
테트라르키아에 대한 생각
광대한 제국을 분할하여 통치한 사례는 세계사에 몇몇 있지만, 성공한 경우는 없습니다.
징기스칸 사후 몽골 제국도 그의 자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광대한 제국이 넷으로 분열되고 결국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카리스마가 흥한 나라는 카리스마가 살아 있을 때는 잘 나가지만, 카리스마가 떠나면 취약해져 붕괴하고 맙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사후 로마는 격렬한 내전을 겪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에도 로마는 추악한 권력 다툼에 휩싸였습니다.
왕정이었던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하고, 원로원을 존중하는 국가원수에서 전제 군주로 변질되어 결국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번영이 가져오는 필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한 멸망 때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산은 결국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로 전해져 1917년 러시아 혁명 때까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