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이탈리아의 검'이라 불린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함께 멸망 직전의 로마를 구한 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탈리아의 방패'라 불린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생애와 전략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명문 파비우스 가문 출신
로마에는 여러 유력 귀족 가문이 있었는데, 막시무스가 태어난 파비우스 가문은 '이탈리아의 검' 마르켈루스의 클라우디우스 가문과 함께 최고 명문 가문으로 꼽혔습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전까지 막시무스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프라에토르(법무관)와 집정관(콘술) 등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때, 세계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일컬어지며 로마 역사상 최악의 적이 된 한니발 바르카가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직접 공격해 왔습니다.
강대함을 자랑하던 로마군은 한니발 앞에서 손발도 쓰지 못한 채 연패를 거듭했습니다.
집정관과 병사들을 계속 잃으며 패배만 반복하던 로마는 더 이상 뾰족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결국 로마가 독재관으로 임명한 인물이 바로 명문 파비우스 가문 출신의 파비우스 막시무스였습니다.
한니발과는 싸워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남자 — '칭크타토르'라 조롱받다
기원전 217년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의 대참패 이후 독재관으로 임명된 막시무스가 선택한 전략은, 놀랍게도 한니발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대패 끝에 막시무스는 깨달았습니다. 정면으로 맞서서는 한니발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를 깨달은 것은 로마인 전체가 아니라 오직 막시무스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공격적인 공세에 나서지 않는 그를 '칭크타토르(Cunctator, 지연자)'라 부르며 경멸했습니다.
당시 칭크타토르라는 별명에는 겁쟁이, 무능한 자, 느림보 같은 강한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먹어도 막시무스는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로마인들은 원로원을 통해 막시무스에게 로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사실상 해임 통보였습니다.
칸나에 전투와 재평가
로마는 다시 한니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결과는 역사가 보여주듯 대참패였습니다.
6만 명, 혹은 7만 명에 이른다는 로마 병사가 전사했고, 집정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마저 목숨을 잃었습니다.
칸나에 전투, 이것이 로마 역사상 최악의 참패로 기록된 전투입니다.
로마인들은 그제야 막시무스가 취했던 행동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한니발과 싸우면 진다는 것을요.
칸나에의 참패 이후 로마는 다시 막시무스를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전략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그를 비웃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칭크타토르'라는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바뀌어 신중함, 치밀함, 인내심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내를 상징하는 '파비안 전략(Fabian strategy)'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파비우스 막시무스에게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는 한니발을 만나면 철저히 회피하며 싸움을 피했습니다.
한니발은 칸나에 전투 이후 로마 시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의 동맹 도시들에 있습니다.
한니발 본인과 막시무스 모두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한니발이 로마 시를 공격하면 동맹 도시들을 포함한 로마의 거대한 군대에 포위되어 궤멸당할 것이라는 점을요.
당시 로마 측이 동원 가능한 병력의 최대치는 약 80만 명으로 추정되는 반면, 보급 없이 한계까지 징집한 한니발의 군대는 5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한니발의 목표는 로마의 동맹 도시들을 배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시라쿠사 등 여러 도시가 한니발 편에 섰습니다.
한니발의 약점은 역시 부족한 보급선이었습니다. 스페인 방면은 코르넬리우스 장군들에게 저지되었고, 해상 보급은 제해권을 쥔 로마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막시무스는 한니발과 마주치면 싸우지 않고 회피했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그의 전략을 비웃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한니발은 계속 공세를 폈지만, 로마 측은 칸나에 이후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패배는 있었지만 치명타는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이탈리아의 방패'라 불렀습니다.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하는 동안, 로마는 이미 카르타고의 본토 아프리카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초조해진 카르타고는 한니발을 본국으로 소환합니다.
로마의 위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한니발은 젊은 로마의 천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자마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파비우스 본인은 포에니 전쟁의 종식을 보지 못한 채 72세로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비우스 막시무스에 대한 평가
그는 로마를 구한 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로마는 멸망했을 것이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니발 같은 천재 전술가의 맹공격을 튕겨낸 것은 그의 공입니다.
막시무스가 없었다면 로마가 스키피오의 시대까지 버틸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올바른 길을 찾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 세계 역사에 빛나는 로마의 최고 장군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