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은 왕, 참회왕 에드워드와 노르만 정복의 서막

데인 왕조의 시조 크누트 대왕이 세상을 떠나자, 잉글랜드에는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크누트와 노르망디 공작의 딸 엠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하르다크누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불과 2년 만에 요절하면서 데인 왕조는 3대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훗날 '참회왕(Confessor)'이라 불리게 되는 에드워드가 등장합니다.

에드워드는 '무준비왕'이라 불린 앵글로색슨 왕 에델레드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형제 알프레드가 있었는데, 잉글랜드 최대 실력자인 웨식스 백작 고드윈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고드윈의 야심은 이미 한창 진행형이었던 셈입니다.

고드윈은 자신의 딸 에디스를 에드워드에게 시집보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외척 정치'처럼, 며느리를 통해 배후에서 잉글랜드 정치를 조종하려던 계획이었습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잉글랜드 국왕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은 왕, 참회왕 에드워드와 노르만 정복의 서막

역대 영국 국왕 가운데 영어를 하지 못한 인물이 드문 것은 아닙니다.

"다스리되, 통치하지는 않는다(Reigns but does not rule)"

이는 훗날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나온 표현이지만, 영국의 왕좌에는 일찍부터 귀족들이 다루기 편한 인물을 앉히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혁신적인 정치보다 기득권 보호를 우선하는 것이 영국 정치의 전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기득권층이 세습 정치인, 대기업 소유주, 관료, 의사라면, 영국의 기득권층은 명백하게 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권 자체는 여전히 강력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왕이 된 에드워드는 노르망디 망명 시절 함께 지낸 친신들을 대거 기용했는데, 이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에드워드를 괴뢰로 만들려던 고드윈과 잉글랜드 제후들은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처럼, 에드워드는 칠왕국 시대부터 이어진 혈통인 머시아 백작과 노섬브리아 백작과 손잡고 고드윈을 추방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1052년, 고드윈이 무력을 앞세우고 잉글랜드에 다시 상륙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됩니다. 에드워드의 총신들은 파면당했고, 에드워드는 문자 그대로 괴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기묘하게 흘러갑니다. 1053년 고드윈이 급서하자, 그의 아들 해럴드가 가문의 실권을 물려받았습니다. 잉글랜드의 혼란을 호기로 여긴 웨일스 제후들이 침공해 왔지만 해럴드는 이를 격퇴했고, 해럴드를 중심으로 한 제후 세력은 '지나치게 강대한 신하들(over-mighty subjects)'이라 불릴 만큼 강력해져 잉글랜드 정치를 주도하게 됩니다.

삼파전의 시작, 106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은 왕, 참회왕 에드워드와 노르만 정복의 서막

'성왕'이라 불리던 에드워드도 나이 50에 접어들었지만 후사는 없었습니다. 그는 고향인 노르망디 공작 기욤을 후계자로 지목한 뒤, 106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사에 밝은 독자라면 '1066년'이라는 연도에서 무언가를 떠올리실 겁니다.

성왕 에드워드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역사에서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라 불립니다.

기욤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그는 이름을 '윌리엄'으로 바꾸고 잉글랜드의 왕이 됩니다. 바로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입니다.

1066년, 노르망디 왕조가 개창된 순간이었습니다.

참회왕 에드워드에 대한 평가

'에드워드 더 커페서(Edward the Confessor)', 즉 '참회왕 에드워드'로 번역되는 그는 때로 '고백자 에드워드'라고도 불립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잉글랜드에 돌아온 이후 줄곧 웨식스 백작 가문의 괴뢰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배경 탓일까요? 그는 기독교 신앙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고, 바로 이 시대에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건립했습니다. 이후 영국 역대 군주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 '성 에드워드 참회왕'의 성소 앞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으며, 에드워드 본인도 1161년 기독교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노르만 정복이든 귀족 세력의 성장이든, 그는 여러모로 영국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라 평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