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공산 폴란드를 탈출한 축구 선수는 몇 명? 에크스트라클라사 망명자들의 사연

공산권에서 서방으로의 망명, 폴란드 축구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산권 국가 선수들의 서방 행 망명은 모든 '인민민주주의' 국가에 공통으로 나타난 골치 아픈 문제였다. 물론 폴란드 축구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바스티안 필라르스키(Sebastian Pilarski)의 연구 덕분에 에크스트라클라사(폴란드 1부 리그) 선수들 사이에서 이 현상이 어느 정도 규모로 벌어졌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폴란드 인민공화국(PRL)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최초의 축구 선수는 구르니크 자브제(Górnik Zabrze) 소속의 헤르베르트 헨리크 폴(Herbert Henryk Pohl, 유명한 에른스트 폴과는 무관한 인물)이었다. '인민 권력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1957년 동독에서 열린 폴란드 청소년 대표팀 일정 중 이탈해 서독으로 '도피'했으며, 이는 조국 배신자라 불릴 만한 행보였다.

그의 뒤를 다른 선수들이 따랐다. 그중에는 1976년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서방으로 넘어간 촘비에르키 비톰(Szombierki Bytom)의 헬무트 두데크(Helmut Dudek)가 있다. 그는 1979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으로 UEFA컵을 들어올리며 유럽 클럽 대항전 트로피를 손에 넣은 최초의 폴란드 선수가 되었다.

역시 빵 때문이었을까?

국가기억연구소(IPN) 우치 지부의 세바스티안 필라르스키에 따르면, 불법 이민을 감행한 경우가 가장 많았던 것은 실레지아 클럽, 특히 구르니크 소속 선수들이었으며 정착지로는 독일 서부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결정에는 가족적 사정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많은 망명자들이 자신의 독일 혈통을 증명할 수 있었다.

공산 폴란드를 탈출한 축구 선수는 몇 명? 에크스트라클라사 망명자들의 사연

루츠 아이겐도르프(Lutz Eigendorf)는 동독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독일행 탈출의 대가로 가장 잔혹한 값을 치러야 했다(사진: Thomas Lehmann, Bundesarchiv, Bild 183-P00521-0033 / CC-BY-SA).

탈출의 동기는 다양했다. 예컨대 포고니 슈체친(Pogoń Szczecin)의 마레크 레시냐크(Marek Leśniak)는 레기아 바르샤바에서 치러야 하는 2년 의무 복무를 피하려 했다. 그의 사례는 특히 흥미롭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열린 올림픽 대표팀 훈련 캠프를 스스로 이탈해 독일로 향했다. 이를 알게 된 폴란드 당국은 그를 설득해 잠시 귀국시킨 뒤 합법적 출국을 허용했는데, 이는 고액의 외화를 받고 바이어 레버쿠젠에 그를 판매하기 위한 계산이었다.

가장 흔한 탈출 이유는 단연 경제적 문제였다. 이 현상은 특히 1980년대에 두드러졌는데, 이는 국내 경제·정치 상황의 악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당수 선수들이 스타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Zbigniew Boniek)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어 했다.

물론 모든 탈출자가 헬무트 두데크처럼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72년 분데스리가 무대를 밟은 최초의 폴란드 선수 발데마르 피오트르 스워미아니(Waldemar Piotr Słomiany, 폴란드 시절 구르니크 자브제 소속)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2년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오드라 오폴레(Odra Opole)의 에우게니우시 피에하체크(Eugeniusz Piechaczek) 역시 같은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 폴란드를 탈출한 축구 선수는 몇 명? 에크스트라클라사 망명자들의 사연

이 글은 학술지 '메모리 앤 저스티스(Memory and Justice)'에 게재된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실제 탈출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세바스티안 필라르스키는 언론 보도와 국가기억연구소 기록 보관소에 남은 자료를 종합해 불법 체류 상태로 해외에 머문 것으로 확인된 폴란드 1부 리그 선수 약 50명의 이름을 특정할 수 있었으며, 이 목록이 결코 전부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참고로 1978년부터 1983년까지 당국이 서방 클럽행 합법 이적을 허용한 선수는 93명이었다.

주목할 점은 폴란드 선수들이 동독이나 루마니아 출신 망명자들만큼 처참한 결과를 겪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독일인 루츠 아이겐도르프의 경우다. 동독 국가보안부(슈타시)는 먼저 그의 아내 주변에 추종자들을 심어 결혼 생활을 파괴했고, 1983년에는 교통사고를 위장한 방식으로 그를 살해했다.

출처

Sebastian Pilarski, "He refused to return to the country" –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 서방으로 탈출한 축구 선수들, "Memory and Justice", 2014, No. 2 (24), 387–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