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화신의 자녀로 산다는 것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자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성씨를 짊어지고는 어떻게 매일을 견뎌야 할까? 처형대에 사람을 보낸 아버지를 사랑할 수도 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럴드 포스너(Gerald Posner)는 저서 『히틀러의 아이들(Hitler's Children)』에서 나치 핵심 인사들의 자녀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건네며, 이 어두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가스실 앞에서도, 피아노 곁에서도
요제프 멩겔레는 수십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잔혹한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같은 시기 부인과 함께 아우슈비츠에서 두 번째 신혼여행을 보내기도 했다.
폴란드 점령지의 학살을 총괄한 한스 프랑크는 낮에는 살육의 지휘자였지만, 저녁이 되면 다정한 아버지로 돌아와 아들과 몇 시간씩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다.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선고를 기다리던 헤르만 괴링은 감옥 안에서도 사랑하는 딸에게 넘쳐흐르는 애정을 담은 편지를 끊임없이 써 보냈다.

처음으로 공개된 자녀들의 증언
폴란드의 즉(Znak) 호리존트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나치 지도부의 삶을 그 안에 있었던 자녀들의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자녀는 이번에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냈다.
일부는 제3제국을 위해 저지른 부모의 범죄 행위를 강하게 규탄하는 반면, 또 다른 일부는 그 죄행을 옹호하려 든다. 그들은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애틋한 그리움 속에 혐오감을 뒤섞는다. 만족스러웠던 유년기의 추억은 끊임없이 범죄의 기록들에 가려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잔혹한 학살자이자 사디스트로만 보이는 그들 안에서 희미한 인간성까지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그들의 자녀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