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베즈다니 1908: 피우수츠키가 20만 루블을 실은 열차를 털다

1908년 9월 26일, 베즈다니 역의 밤

1908년 9월 26일 밤 11시경, 한 대의 열차가 빌뉴스 인근의 작은 역, 베즈다니에 천천히 들어섰습니다. 승강장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 남자도 섞여 있었습니다. 여행객들 누구도 그 수염 난 낯선 이가 '지우크(ZIUK)', 즉 차르 정부 비밀경찰 오흐라나가 쫓고 있던 폴란드 사회당(PPS)의 지도자 유제프 피우수츠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열차가 승강장에 멈추자마자 기다리던 무리 중 한 명이 열차로 달려가 그 안으로 무언가를 던져 넣었습니다. 잠시 후 작은 역 일대는 폭발하는 폭탄의 굉음에 뒤덮였습니다.

이 신호와 함께 열차에 타고 있던 발레리 스와베크가 지휘하는 폴란드 사회당 전투원들은 우편물 칸을 경비하던 헌병들의 무기를 해제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껴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강도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문은 물론이고 십중팔구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모험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그 열차에는 20만 루블이 넘는 돈이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붉은 깃발 아래 활동하던 폴란드 무장 세력에게 이렇게 많은 현금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베즈다니 1908: 피우수츠키가 20만 루블을 실은 열차를 털다

영화 '피우수츠키' 장면

수십 분 후, 우편물 칸은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미래의 국가원수뿐만 아니라 무려 제2공화국의 총리 4명—피우수츠키 외에 발레리 스와베크, 알렉산데르 프리스토르, 토마시 아르치셰프스키—까지 참여했던 베즈다니 열차 강습 작전은 완벽한 성공으로 끝났습니다. 베즈다니 사건이 원수의 '대담한' 전기들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의 좌파적, 테러리스트적 과거를 기억하는 전기들이 말입니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최초의 피우수츠키 영화 전기 역시 이런 매력적인 소재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미하우 로사 감독이 연출하고 보리스 시츠가 주연을 맡은 바로 그 영화입니다. 감독은 폴란드 역사상 가장 요란했던 강도 사건의 진행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사실 강도들은 엄청난 행운아였습니다. 작전 자체는 극도로 서투르게 수행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피우수츠키는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필요할 때는 허세도 부릴 줄 알았습니다.

웃픈 해프닝의 연속

로사 감독의 영화에서 한 전투원은 작전 후,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 선로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폭발물 배치를 담당한 알렉산데르 루체비르크가 서투르게 처리한 탓이었습니다. 그는 폭발물을 젖은 땅 위에 놓았고, 결국 습기 때문에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기관사가 열차를 다시 움직여 역에서 도망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비르크는 기관차를 향해 총격을 가했습니다. 리볼버로 기관차 승무원들을 위협하며 역 건물로 가라고 명령했고, 그곳에서 역 직원과 여행객들은 무장 상태로 억류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한 전투원은 그곳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다른 손에는 천에 싸인 꾸러미를 들고 있었는데, 명령에 불복종하면 터뜨리겠다는 폭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쥐고 있던 것은 천과 종이에 싸인… 청어 통조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너무나 설득력 있게 연기한 나머지, 위협받던 승객들 중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승강장의 상황도 좋지 않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돈을 실은 열차가 역에 나타나면 전투원들이 소포 칸 창문으로 달려가 몽둥이로 유리를 깨고 그 안에 폭탄을 던져 넣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임무를 맡은 참가자는 유리를 깨지 못했습니다. 그는 열차를 따라 달리며 어설프게 유리를 두드렸고, 기습 효과는 비눗방울처럼 사라졌습니다. 그의 '노킹'은 러시아 헌병들을 경계시켰습니다. 한 명이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고,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테러리스트들의 총알이 더 정확했습니다. 러시아인은 승강장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동안 간신히 폭탄을 통풍구 구멍으로 밀어 넣는 데 성공했지만, 폭발물은 던진 자의 손에서 거의 터질 뻔했고, 근처 울타리 너머로 던져져 칸 자체에는 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베즈다니 1908: 피우수츠키가 20만 루블을 실은 열차를 털다

베즈다니 작전은 피우수츠키의 가장 대담한 행동이었다

열차가 마침내 멈추자, 전투원들은 총구를 겨눈 채 승객들을 역 건물로 데려갔습니다. 나머지 습격자들은 피우수츠키의 지휘 아래 소포 칸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습격자들은 호위 헌병들을 위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소포가 있는 칸의 장갑 문을 뚫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호위병들도 그곳에 숨어 자신들의 안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부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폭발물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아 폭파는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피우수츠키는 허세를 부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문 밖의 경비병들에게 러시아어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자신에게 폭탄이 있으며, 칸을 열지 않으면 터뜨리겠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10초를 주며 천천히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10, 9, 8, 7…

긴장감 넘치는 순간, PPS 전투원들과 호위병들 사이의 심리전은 미하우 로사 감독의 최신작에서 완벽하게 그려집니다. 칸을 지키던 병력은 긴장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문이 열렸고, 호위병들은 리볼버 총구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제 큰돈을 찾아 제시간에 도망치기만 하면 됐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도들은 거의 암흑 속에서 작업해야 했습니다. 칸 내부를 밝히는 데 사용된 아세틸렌 램프가 고장 났습니다. 결국 안에 들어간 후 손전등으로 불을 밝혔지만, 수백 개의 소포와 꾸러미를 뒤져야 하는 상황에서 빛이 너무 약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칸은 우편물로 거의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즈다니 1908: 피우수츠키가 20만 루블을 실은 열차를 털다

수배 포고문

그리고 또다시 행운이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 돈과 유가증권 꾸러미를 발견한 것입니다. 20만 루블이 넘는 돈이 피우수츠키와 그의 동료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베즈다니 작은 역에서 벌어진 작전은 45분간 이어졌습니다. '지우크'는 다음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직전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전투원들 중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러시아 측의 피해는 헌병 2명 사망과 다수의 부상이었습니다.

1908년 베즈다니 사건은 폴란드 좌파 운동 역사상 가장 대담한 공격이었습니다. 또한 유제프 피우수츠키가 직접 참여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테러 작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시는 이런 투쟁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열차 강습으로 얻은 자금은 훨씬 더 야심 찬 사업, 즉 저격 조직 건설—미래의 폴란드 군단과 폴란드군의 씨앗—에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