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해리 하프트: '유대인 짐승'이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그는 살기 위해 링에 섰다

폴란드 베우하투프에서 태어난 해리 하프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화장터에서 일했고, 죽음의 행진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족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숨겼지만, 어느 날 아들과 마주 앉아 아우슈비츠에서 왜 '유대인 짐승'이라 불렸는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권투선수 해리 하프트는 언론과 가족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감춰왔습니다. 그러나 1990년, 그는 윌리엄 B. 헬름라이히와의 인터뷰에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당시 헬름라이히는 수용소 지옥을 견뎌낸 뒤 미국에서 성공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모은 저서(『Against All Odds: Holocaust Survivors and the Successful Lives They Made in America』)를 집필하는 중이었고, 하프트에게 전쟁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돌아받은 대답은 이랬습니다. "별로 없죠. 사실 거의 아무것도요. 제가 너무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그 결실이 바로 『해리 하프트: 베우하투프 출신 권투선수의 이야기, 아우슈비츠의 지옥에서 록키 마르시아노와의 시합까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전직 수용소 포로의 아들이자 작가인 앨런 스콧 하프트가 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썼으며, 그 역시 어른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리 하프트:  유대인 짐승 이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그는 살기 위해 링에 섰다

인간 안에서 희망이 사라져가는 방식

해리 하프트의 삶은 어떤 소설가도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해리, 본명은 헤르치카(Hercka)였고, 1925년 7월 28일 폴란드 베우하투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힌다에게는 여덟 번째 임신이었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 것을 그녀는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듯한 생계 속에서 열 번째 식구를 먹여야 하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프트 가족에게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해리 하프트:  유대인 짐승 이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그는 살기 위해 링에 섰다

▲ 1925~1941년경 베우하투프의 모습을 담은 기록 사진

소년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고, 10대 무렵 전쟁이 발발하며 온 가족이 비극에 휩쓸렸습니다.
헤르치카는 나치의 손아귀에 넘어갔습니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강제 노동 수용소를 전전했습니다. 한동안은 고향 베우하투프 근처에서 보내기도 했고, 그는 가족과 연인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해리는 병사들이 언니 브란델과 남편을 집에서 끌어내 만원 트럭에 오르게 하는 것을 제 손발이 굳은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한 후에도 브란델이 계속 애원하며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그러다 병사 하나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집에서 나와 트럭을 쫓는 것이 보였다. 독일인 병사는 아기를 브란델의 뻗은 팔 쪽으로 던졌지만 못 맞추면서 아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또 다른 병사는 주저 없이 리볼버를 꺼내 총구를 겨눴다. 아이의 몸은 도랑에 방치되었다.

— 앨런 스콧 하프트의 책 중에서

당시 해리는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그날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함께, 가족을 다시 산 채로 만나리라는 희망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짐승들로 가득한 수용소의 '짐승'

헤르치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화장터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가 한 일을 묘사한 기록은 처참할 정도로 섬뜩합니다.

발밑에는 가스실에서 곧장 실려온 알몸의 남녀노소 시신으로 가득 찬 수레가 내려지고 있었다. 그들은 시신을 화로에 던져 넣어야 했다. 해리는 죽은 이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른의 시신을 불속으로 던지는 데는 두 명이 필요했지만, 아이들의 시신은 해리 혼자 다뤄야 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충분히 튼튼해서 일할 수 있었기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원망했다.

해리는 수용소에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병사들과 거래를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슈나이더라는 병사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해리는 물건을 훔치고 밀수를 해주었고, 슈나이더는 그에게 음식을 주고 가능할 때면 의사까지 불러다 주었습니다.

결국 그 독일인은 해리를 '스타'로 만들기로 합니다. 해리는 SS 장교들의 오락을 위해 열리는 권투 시합에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KO패한 아마추어 선수들은 막사로 끌려가거나 화장터로 직행했지만, 해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고 말입니다.

하프트는 살기 위해 권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의 종말까지 살아남았습니다. SS가 수용소 포로들을 데리고 떠나는 죽음의 행진에서도 그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낮의 고역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진정한 공포는 밤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악몽 속을 걷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살아남으려는 포로들은 마지막 남은 인간성의 조각마저 버리고 있었다.

해리 하프트:  유대인 짐승 이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그는 살기 위해 링에 섰다

▲ 전후 해리 하프트는 놀라운 커리어를 쌓았다

생계와 커리어

해리는 SS 장교의 제복을 입고 비인간적인 죽음의 행진에서 탈출해 독일의 실향민 수용소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전직 수용소 포로들을 돕기 위해 독일군에게서 집을 몰수해 유대인들에게 나눠주던 미군 병사들과 알게 되었고, 그중 하나의 집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남자'로 유명세를 탔고, 미군들은 그 능력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리하여 하프트의 집에서는... 매춘업소가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만에 해리는 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많은 손님들이 그와 알몸의 여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신나는 밤을 찾는 손님들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 아들 앨런이 책에서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병사가 그런 사진을 수용소 생환자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중 최근까지 죽음의 행진에 시달리던 한 사람이 웃고 있는 남자 속에서 자기 형제를 알아봤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리는 페레츠와 재회하게 되었고, 한동안 두 사람은 함께 그 집을 운영하며 같이 살던 여인들의 일을 관리했습니다.

해리 하프트:  유대인 짐승 이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그는 살기 위해 링에 섰다

▲ 해리는 훗날 록키 마르시아노(사진)와 직접 링에서 마주할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미군 곁에서의 황금시대는 영원할 수 없었습니다. 해리는 유대인 권투 선수권 대회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의 인생에는 새로운 장이 열립니다. 대회 우승을 계기로 그는 미국행의 기회를 잡았고, 그곳에서 유일한 백인으로서 챔피언들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의 이력서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다니, 그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의 승리였다

해리 하프트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담을 넘어섭니다. 그는 가족을 잃고, 죽음의 화장터에서 시신을 다루며, 살기 위해 동포와 링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나치는 그를 '유대인 짐승'이라 불렀지만, 그 '짐승'이라는 이름은 사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전후 그는 미국에서 프로 권투선수로 활약하며 무려 록키 마르시아노와 시합까지 치렀습니다. 결과는 패배였지만, 아우슈비츠의 화장터에서 살아남은 남자에게 그 시합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적이자 승리였습니다. 그의 아들 앨런이 아버지의 증언을 책으로 엮어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잊히면 안 되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 하프트:  유대인 짐승 이라 불렸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그는 살기 위해 링에 섰다 이 글은 오트바르테(Otwarte)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한 『해리 하프트: 베우하투프 출신 권투선수의 이야기, 아우슈비츠의 지옥에서 록키 마르시아노와의 시합까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