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룩셈부르크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는 서기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쯤 폐허가 된 로마 요새 '작은 성(Lucilinburhuc)'이 지크프리트 1세 백작에게 하사된 것이 그 시초였다.
워털루 이후 독립한 유럽 최소급 국가
이 작은 영지는 1354년 공국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격동의 역사를 걸어왔다. 1815년 워털루 전투 이후 비로소 공식적인 독립 국가의 지위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이 공국의 인구는 약 30만 명에 불과했다.
장교 6명, 병력 300명의 '육군'
당시 공국은 샤를로트 대공녀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녀의 남편 펠릭스 왕자는 소규모 헌병대의 명예 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헌병·의용군단'이라 불리던 이 부대는 1881년에 창설되었으며, 전쟁 직전 기준으로 장교 6명과 부사관 및 병사 300명을 보유한 것이 전부였다. 지휘관은 에밀 스펠러 소령이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한창이던 1939년 9월 15일, 125명 규모의 의용병 중대가 급히 신설되어 헌병단 예하에 배치되었다. 이로써 총 425명의 병력은 40명씩 10개 소대로 편성되었고, 각 소대는 다시 3개의 전투 분견대로 나뉘었다.
동시에 상근 경찰관들로 구성된 또 다른 부대인 '왕실-대공 헌병 중대'도 있었는데, 이들은 장교 13명과 부사관 및 경찰 255명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룩셈부르크의 총 전투력은 보병 1개 대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고, 중화기 같은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독일 국경을 지킨 '슈스터 라인'
1940년 초, 독일의 침공 위협이 날로 뚜렷해지자 룩셈부르크는 '슈스터 라인(Schuster-Linie)'이라 불리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독일 국경 일대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기관총 진지 41개소와 차량 차단 장애물 18개, 그리고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방어 시설들이 세워졌다.
또한 프랑스 국경 방향에도 차단 장벽 5개가 추가로 설치되었으나, 이는 사실상 정치적 선전 포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의 침공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이 작은 나라의 미약한 방어선이 밀려드는 독일의 물결을 막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