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모니 체포우 전투: 카라크리스토스가 이끈 북에피루스 그리스인들, 알바니아군을 분쇄하다

모니 체포우 전투: 카라크리스토스가 이끈 북에피루스 그리스인들, 알바니아군을 분쇄하다

북에피루스 봉기의 배경

1913년 런던 조약으로 열강들은 알바니아 국가의 성립을 승인했습니다. 이어 피렌체 의정서에 따라 그리스의 북부 영토, 즉 북에피루스가 새로 건국된 알바니아에 귀속되었습니다. 열강은 그리스에 북에피루스를 할양할 것을 강요했고, 거부할 경우 에게해 섬들에 대한 주권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는 이러한 협약을 존중했고, 나아가 그 지역 그리스 주민들의 어떠한 반응도 부추기지 않겠다고 열강에 약속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북에피루스의 그리스인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1914년 2월 14일 드디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북에피루스인들은 그리스 정부가 도움을 거절하는 상황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수백 명의 군사 의용병, 현역 병사, 베테랑 투사들,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해냈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기관총과 대포까지 손에 넣어 북에피루스의 형제들과 합류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승전을 거듭했고, 1914년 3월 17일 코르푸 의정서를 통해 자치권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이 의정서는 단 한 번도 이행되지 못했는데, 몇 달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앞서 알바니아인들은 터키와 이탈리아의 지원과 격려를 등에 업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코르차에서 그리스인들의 봉기를 진압한 그들은 곧 아르기로카스트로로 칼끝을 돌렸습니다.

모니 체포우 전투

4월 14일, 알바니아군은 그리스 부대들을 격파한 뒤 역사적인 체포우 수도원 방면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그들은 그리스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했습니다. 그리스 부대를 지휘한 이는 그리스 육군 명예 소령(실제 계급은 대위) 블라시스 카라크리스토스(Vlasis Karachristos)였습니다. 그리스군은 가르디키와 코로니 마을에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알바니아군은 증원을 받아 다시 반격해 왔습니다. 그리스군은 이틀 밤낮을 사투했지만, 카라크리스토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퇴를 강요당했습니다. 증원된 알바니아군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체포우 수도원을 점령한 뒤 아르기로카스트로에서 불과 5km 떨어진 지점까지 진출했습니다.

상황은 극도로 위급했지만, 이른바 '붉은 외투(Erythrochiton)' 부대의 증원으로 전선은 일시적으로 안정되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었음에도 카라크리스토스는 반격을 결심합니다. 그는 체포우 수도원의 탈환이 이 전역의 생사를 가르는 핵심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경험 많은 용사, 카라크리스토스

카라크리스토스는 경험과 용기를 겸비한 장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 육군에서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시작했으며, '마브로스 1897'호 난파 사고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1차·제2차 발칸 전쟁에서 영웅적으로 싸웠고,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북에피루스 봉기가 일어나자 자원하여 전선에 나섰고, 델비노 연대의 편성을 직접 맡았습니다.

결정적 반격, 그리고 승리

4월 20일, 결정적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알바니아군의 반격은 격퇴당했고, 이제 북에피루스인들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4월 22일 밤부터 23일로 넘어가는 밤, 카라크리스토스와 그의 병사들은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야간 기습 공격으로 그리스군은 알바니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알바니아군의 되돌려친 반격은 그리스군에 상당한 압박을 가했고, 한때 심각한 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카라크리스토스는 병사들의 선두에 서서 직접 돌진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전진해 적진에 공포를 퍼뜨렸고, 적을 문자 그대로 휩쓸어 버렸습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리스군은 적을 완전히 패주시켰습니다.

알바니아군은 사망자와 포로들을 전장에 남긴 채 깊숙이 후퇴했습니다. 포로 중에는 이탈리아 장교가 포함되어 있었고, 전장에서는 이탈리아 병사들과 불가리아 위원들의 시신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리스군은 추격을 계속하여 4월 25일, 마침내 알바니아군으로 하여금 휴전을 요청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전투에서는 '붉은 외투'의 지도자 알렉산드로스 로마스, 소위 게라시모스 프네우마티카토스, 람보부 독립중대를 이끈 스트라토스와 사켈라리스 중위, 그리고 소위 테오도로스, 마크리다키스, 타가로풀로스, 코스타렐로스가 특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투의 의미와 비극적 결말

모니 체포우 전투는 아르기로카스트로를 구해냈고, 유감스럽게도 일시적이었지만 북에피루스 문제 역시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탈리아의 압박, 그리고 그리스 내부를 갈라놓은 재앙적인 국민분열(National Division)이 겹치면서, 북에피루스는 결국 알바니아에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모니 체포우 전투: 카라크리스토스가 이끈 북에피루스 그리스인들, 알바니아군을 분쇄하다

블라시스 카라크리스토스.

모니 체포우 전투: 카라크리스토스가 이끈 북에피루스 그리스인들, 알바니아군을 분쇄하다자치 북에피루스의 깃발.

PANTELIS D. KARYK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