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포레토 전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꼽힌다. 자신보다 더 강력한 적을 상대로, 극도로 험준한 지형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 제2군은 고리치아 남쪽의 광범위한 전선 구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이탈리아에게 성공적이었던 이손초 강 11차 공방전의 영광을 안고 있었다. 9개 군단과 24개 사단을 거느리고 60km 전선을 담당하는, 이탈리아 최강의 군대였다.
근거 없는 낙관?
그래서 카펠로 장군과 이탈리아군 총사령관 카도르나는 미래를 충분히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적은 처음에 오스트리아 제2군(이손초)과 오스트리아 제10군이었다.
그러나 제10군이 서쪽으로 물러나면서, 그 자리에 새롭게 편성된 오스트리아-독일 혼성 제14군이 등장했다. 전선이 재편된 뒤에도 이탈리아군 단독으로 두 연합군과 거의 맞먹는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보병 24개 사단 versus 오스트리아 18개 사단과 독일 7개 사단이었다.
문제는 이탈리아군의 무게 중심이 동쪽, 즉 고리치아와 이손초 하류 지역에 쏠려 있었다는 점이다. 제2군 9개 군단 가운데 6개가 그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알프스 산악 지역 약 30km 전선은 단 3개 군단이 경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사령부가 8개 사단으로 30km 산악 지형을 비교적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적이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실제로 이탈리아 지휘부의 관측은 틀리지 않은 듯 보였다.
험준한 지형과,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자리한 적에게 거의 엄폐물을 주지 않는 환경은 대규모 공격에 필요한 물자와 병력의 집결을 허용하지 않을 터였다.
이렇게 해서 해당 구역에 대한 안도감이 이탈리아 참모부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전쟁에는 '안전한 진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판단을 내린 오스트리아군과 독일군은 상대가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곳, 즉 알프스 산악 지역 30km 미만의 전선에서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공격
공격 계획은 산악전의 노련한 경험자인 독일의 크라프트 장군과 오스트리아의 크라우스 중장이 협력해 완성한 산물이었다. 게다가 계절이 가을 중순이었기에, 적 입장에서는 알프스 지역 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이탈리아군은 일부 사단을 최전선에서 이미 철수시킨 상태였다. 결국 해당 구역을 지키는 것은 단 4개 사단뿐이었고, 사단당 평균 담당 전선은 7.5km에 달했다. 제4·27·7군단 소속 4개 사단은 전선 뒤쪽 수 킬로미터 지점에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공격 전 정찰
오스트리아-독일 연합군의 계획은 단순했다. 공격 지역에서 5:1의 수적 우세와 전반적인 질적 우세를 누린 크라프트와 크라우스는 이손초 상류 계곡을 따라 진격해 카포레토를 점령하고, 이탈리아 제2군의 좌익부터 무너뜨린다는 구상이었다.
흑산맥 서쪽 능선을 이루는 스톨과 콜로브라트 고지마저 함락한다면, 이탈리아군 전체를 분할·포위해 포 강 이남으로 밀어내는 것을 막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군은 다가올 타격에 대한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무시했다. 정보에 반응한 카도르나는 위협받는 구역에 보병 연대 2개를 파견하는 선에서 그쳤다.
붕괴
10월 24일 새벽, 오스트리아-독일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이탈리아군은 참모든 병사든 첫 번째 불쾌한 충격을 받았다. 같은 날 아침 크라우스의 오스트리아군이 먼저 공격해 이탈리아 진지를 돌파했고, 스톨 고지를 거의 점령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중앙 지역에서는 당시 대위였던 불굴의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알프스 군단이 콜로브라트까지 진격해, 실레지아 제12사단이 카포레토로 통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카포레토는 그날로 함락되었다.
24일 오후에야 이탈리아 사령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최전선 4개 사단 중 3개와 연락이 두절되었고, 남은 하나인 제50사단은 궤멸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카도르나는 위협받는 전선에 즉시 5개 사단을, 이어 제2제대로 4개 사단을 추가 파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부대들은 도주하는 이탈리아 병사들과 마주쳤고, 서로 뒤섞이면서 곧 공황이 만연했다.
여기에 산악 지형을 이용해 깊숙이 침투하며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한몫했다. 이탈리아군 눈에는 전선이 완전히 붕괴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오스트리아-독일 급습 부대들은 지형을 활용해 산을 넘으며 계곡의 이탈리아 진지들을 차례로 제압했을 뿐이다. 1940~41년 그리스 파파고스 군이 북에피루스에서 보여준 작전과 흡사한 방식이었다.
결국 공황에 빠진 이탈리아군은 무질서하게 도주했다. 공격 개시로부터 단 28시간 만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기준으로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1917년 11월 7일 포 강을 건넌 뒤에야, 그리고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증원을 받은 후에야 겨우 멈춰 섰다.
단 3일 만에 이탈리아군은 2년간의 전투로 쟁취한 영토를 모두 잃었고, 30만 명이 넘는 병력과 3,000문의 포를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