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그리스 최초의 주식 시장 거품: 라브리온 은광을 둘러싼 프랑스·이탈리아·싱로스의 각축전

그리스 최초의 주식 시장 거품: 라브리온 은광을 둘러싼 프랑스·이탈리아·싱로스의 각축전

라브리온(Lavrio)의 은광은 고대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광산에서 나온 수익으로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한 강력한 아테네 함대가 건설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여전히 은을 함유한 납 광석이 지표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사업가 세르피에리의 등장

1864년, 칼리아리와 사르데냐에 광산을 소유한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 요안니스 밥티스티스 세르피에리(Ioannis Baptistis Serpieri)는 그리스 재무부에 제출된 광물학자 안드레아스 코르델라스의 연구 자료를 접하고 라브리온 광산 재개장의 타당성을 확신하게 된다. 그는 1863년 한 유럽 회사의 대표 자격으로 그리스에 입국했다.

세르피에리는 펜텔리 수도원과 케라테아 지역으로부터 총 10,791에이커에 달하는 부지를 매입했는데, 이곳에는 고대 광산에서 배출된 광재(제련 찌꺼기)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듬해인 1864년 4월, 그는 라브리온에서 이탈로-프랑스 합작회사 '루-세르피에리-프레시네(Roux-Serpieri-Fressynet C.E.)'를 설립한다.

광재 더미를 둘러싼 분쟁

문제는 바로 이 광물 폐기물, 즉 광재 더미였다. 회사는 이에 대한 개발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회사는 광재 개발 문제를 두고 그리스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리스 언론은 과장된 추산을 내놓으며 이 광재의 가치가 어마어마해 그리스의 경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쿠문두로스(Koumoundouros) 정부는 광재를 국유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회사는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마저 강하게 반발했다. 회사는 양국에 중재를 요청했고, 그리스 정부에 대해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1,500만 드라크마의 배상까지 요구했다.

연쇄 정부 붕괴와 포함 외교의 위협

이 갈등의 결과로 쿠문두로스 정부가 무너졌고, 뒤를 이은 자이미스(Zaimis) 정부와 불가리스(Voulgaris) 정부 역시 차례로 붕괴했다. 이후 에파미논다스 델리요르기스(Epaminondas Deligiorgis)가 새 정부를 구성했는데, 그는 최초로 이 광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인물이었다. 델리요르기스는 분쟁 해결을 위해 회사가 그리스 법정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는 이에 반발하며 회사와 그리스 국가 간의 분쟁을 국제 중재에 회부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프랑스는 그리스가 중재를 수용하지 않으면 자국 함대로 그리스 항구를 봉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포함 외교(gunboat diplomacy)'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싱로스의 인수와 주식 거품의 붕괴

그러나 델리요르기스와 게오르기오스 국왕은 열강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때 안드레아스 싱로스(Andreas Syngros)가 등장해 그리스 자본가들을 이끌고 해당 회사를 인수하며 사태의 흐름을 바꾼다.

하지만 이 소식은 새 회사 주가의 기상천외한 폭등을 낳았다. 문제는 이 상승이 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결국 광산 운영 수익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주가는 급격히 폭락했다. 그 결과 대다수 주주들은 재정적 파탄이라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역사상 최초의 주식 시장 거품 사건이었다.

진짜 승자는 누구였나

소액 주주들이 파산하는 동안 진짜 승자는 따로 있었다. 싱로스는 저렴하게 인수한 회사 지분을 거품 가격에 처분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포함 외교를 통해 자국 기업의 이익을 관철시켰다. 라브리온 은광을 둘러싼 이 사건은 그리스 최초의 주식 시장 거품이자, 열강의 압력과 집단적 투기 심리가 결합할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