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중세 맥주, 홉 대 그루트 – 왜 중세인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나?

서로마 제국이 야만족의 손에 무너진 뒤, 옛 제국 영토에는 로마의 관습을 지키던 기존 주민들과 새롭게 이주해온 민족들이 공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식탁 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북유럽의 맥주와 로마의 와인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시장에서 보완하며 중세 유럽인의 입맛을 충족시켰습니다. 알프스 북쪽에서는 맥주를, 남쪽에서는 와인을 마셨습니다.

중세 맥주, 홉 대 그루트 – 왜 중세인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나?

북부 지역에서 맥주는 거친 전사들이 승리와 번영을 축하하는 술이었을 뿐 아니라, 한 종류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14세기 문서에는 아이의 아침 식사로 맥주 한 잔 또는 수프 한 그릇을 권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른바 '맥주 수프'의 주재료는 맥주 자체였고, 여기에 계란과 빵, 그리고 몇 가지 준비물이 더해졌습니다...

맥주를 불에 데우다가 뜨거워지면 버터를 넣습니다. 버터가 녹으면 불을 끄고 달걀 두 개를 섞습니다. 혼합물을 거세게 젓은 뒤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접시에 흰 빵 한 조각을 담아 그 위에 맥주 혼합물을 부어 냅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에일 수프가 친숙한 일상 요리였으며, 어떤 이들은 하루 최대 3리터의 에일을 섭취하기도 했습니다. 북유럽에서는 빵과 맥주가 두 개의 주식으로 꼽혔습니다. 실제로 독일의 의사 요한 플라코토무스(Johann Placotomus)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한 사람이든 병든 사람이든 모두에게 맥주가 필요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 역시 맥주의 열렬한 옹호자였습니다. 1740년부터 1786년까지 프로이센을 다스린 그는 1777년, 커피에 맞서 맥주를 방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내 백성들이 소비하는 커피가 늘고, 수입품 값으로 나라의 금화가 흘러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역겨운 일입니다. 모두가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내 백성들은 맥주를 마셔야 합니다. 폐하는 맥주를 마시며 자랐고, 선왕들과 장교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맥주를 마신 군인들은 싸워 이겼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군인이 새로운 전쟁이 닥쳤을 때 고난을 견디고 적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왕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맥주 소비는 왜 그토록 폭넓게 자리 잡았을까요? 오늘날처럼 깨끗한 물이 어디서든 손에 닿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이 마실 수 있는 수준인지조차 운에 달려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는 물 자체보다 맥주 같은 발효 음료를 마시는 편이 더 안전하고 믿음직했습니다. 보리의 발효 과정에서 물을 오염시키는 대부분의 유해 박테리아와 세균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맥주는 물보다 훨씬 건강한 음료였습니다.

중세 맥주, 홉 대 그루트 – 왜 중세인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나?

브루어(양조장이)

중세의 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맥주 무역에 대한 절대적 독점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11세기까지 맥주 제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수도승들이 처음 양조한 맥주는 cervesia monacorum이라 불렸으며, 물과 보리, 효모, 그리고 그루트(gruit)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루트는 머틀, 산림 열매, 야생 로즈마리 등을 배합해 매운 향을 더한 혼합 향료로, 그 배합법을 아는 이는 수도승들뿐이었습니다.
현재 스위스에 위치한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맥주를 판매한 최초의 수도원 중 하나로, 10세기에 이미 세 가지 종류의 맥주를 판매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프리마멜리어(prima melior): 풍미가 뛰어난 최상급 맥주로, 교회 고위 성직자와 수도원을 찾은 귀족들을 위해 따로 마련되었습니다.
  • 세쿤다(secunda): 프리마멜리어와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등급이 한 단계 낮아 수도승들이 마셨습니다.
  • 티에르차(tertia): 가장 부드럽고 재료도 적은 맥주로, 가난한 이들과 순례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중세 맥주, 홉 대 그루트 – 왜 중세인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나?

그러나 교회는 '홉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도시가 성장하고 유럽 전역에서 상품을 쉽게 운송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양조업자들은 수도승과 그루트의 독점을 무너뜨릴 무기를 홉에서 찾았습니다. 사실 홉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그동안은 맛을 좋게 하는 약초, 이른바 '맛 좋은 약'으로 쓰였을 뿐이었습니다. 수도승들의 맥주 독점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홉 맥주 생산에 대한 민간 양조업자들의 지지였습니다. 수도승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홉으로 양조하는 업자들에게는 세금이 부과되었습니다. 12세기 말, 도시의 급성장과 함께 양조 산업에 대한 통제권은 완전히 장인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행정 당국은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맥주의 구성, 즉 보리 맥아·물·홉·효모를 확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쓴맛의 맥주는 바로 홉에서 탄생했습니다. '맥주'라는 단어는 켈트어에서 비롯되어 영어로는 비어(beer), 프랑스어로는 비에르(bière), 독일어로는 비어(Bier), 이탈리아어로는 비라(birra)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에는 카를로스 5세(Carlos V)가 유스테 수도원(카세레스)에 스페인 최초의 양조장을 열면서야 홉이 들어간 쓴 맥주가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5세기에 이르러서야 홉을 넣은 맥주(비어)와 홉 없이 만든 맥주(에일)가 구분되어 양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침용법은 장 프리무스(Jean Primus), 즉 브라반트 공작 후안 1세가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양조업자들의 비공식 상징인 감브리누스(Gambrinus) 역시 그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협업: Edmundo Pérez
출처: Richard W. Unger, 『중세와 르네상스의 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