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메리아 보스포루스 왕국은 수많은 헬레니즘 왕국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다. 그 역사는 밀레투스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이 아조프해(당시 '마이오티스 호수'로 불렸다) 연안과 크림반도, 타만반도, 나아가 돈강 하구까지 새 도시들을 세웠던 '제2차 식민 운동'과 깊이 얽혀 있다.
식민 도시들의 탄생과 최초의 통합
크림반도에는 케르키니티스, 테오도시아, 헤르소네소스, 님파이온, 키메리콘, 미르미케이온, 판티카파이온 등 거대 도시들이 들어섰고, 타만반도에는 파나고리아, 헤르모나사, 고르기피아가 건설되었다. 한참 뒤에는 돈강 유역에 타나이스라는 도시도 세워졌다.
이 도시들은 기원전 480년까지 독립 상태를 유지했다. 이후 일부 도시들이 레스보스 혹은 밀레투스 출신으로 추정되는 아르카나크티스 왕조 아래 통합되면서 왕국의 초석이 놓였다.
스파르토코스 왕조의 등장
그러나 기원전 438년, 스파르토코스(스파르타코스)라 불리는 인물이 이 왕조를 무너뜨린다. 그는 트라키아 용병 출신으로, 그리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오드뤼사이 부족 출신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스파르토코스 가문이 모든 도시를 즉시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무력 충돌 끝에야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스파르토코스 왕조는 기원전 108년까지 권력을 유지했으며, 이후 왕국은 폰투스의 유명한 왕 미트리다테스 6세 에우파토르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주목할 점은 스파르토코스 왕조가 그리스인 신민에게는 '주군(아르콘)'이라는 칭호를, 이민족에게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431년 스파르토코스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아들 사티로스 1세였다. 그는 기원전 387년까지 재위하며 지역 내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를 통치 아래 두고 국가를 크게 확장했다.
왕위 계승과 내부 분열
예컨대 님파이온 도시는 사티로스의 후계자 레우콘(기원전 387~347년)에 의해 왕국에 편입되었다. 그 뒤를 아들 파이리사데스 1세가 이었는데, 그가 기원전 310년에 사망하자 아들들인 에우멜로스와 사티로스 2세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승자는 에우멜로스였고, 그는 기원전 303년까지 통치했다. 이후 스파르토코스 3세가 왕위를 이었고, 다시 파이리사데스 2세가 기원전 245년까지 재위했다.
그 뒤를 스파르토코스 4세와 레우콘 2세가 이었다. 레우콘 2세가 암살당한 뒤(기원전 220년), 왕국의 실권은 왕족이 아닌 유일한 인물인 히기아이노스에게 넘어갔고, 그는 기원전 200년까지 통치했다. 이후 스파르토코스 5세, 파이리사데스 3세·4세·5세가 왕위를 이었으나 이들은 이민족의 잦은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파이리사데스 5세는 왕국을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에게 넘겼다.
'헬레니즘 왕국'으로서의 정체성
보스포루스 왕국은 순수한 그리스 왕국이 아니라 헬레니즘 왕국이었다. 그럼에도 그리스 문화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발굴된 주화의 명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레우콘 왕은 아테네 시민권까지 보유한 인물로, 곡물을 공급하는 대가로 아테네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로마의 개입과 왕조의 교체
미트리다테스가 로마에 패배한 뒤 왕국은 그의 아들 파르나케스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그 역시 로마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승인 아래 왕국은 미트리다테스의 딸 다이나미스와 그녀의 남편 아산드로스의 손에 들어갔다.
아산드로스 사후에는 로마의 개입으로 폴레몬(기원전 16년~서기 8년)이 왕국을 다스렸고, 그 뒤를 아산드로스의 아들 아스푸르고스가 이었다. 그는 서기 38년까지 통치하며 자신의 왕조를 세웠고, 이 왕조는 서기 341년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왕은 리스쿠포리스였다. 왕국은 결국 고트족의 공격으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

크림반도–아조프해–타만반도 지역의 주요 그리스 도시 분포도.

판티카파이온 출신 병사 스타필로스의 묘비.

돈강에 위치한 타나이스 도시의 고고학적 유적.

그리스어 명문이 새겨진 주군 히기아이노스의 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