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죽음의 출구… 1,000명의 그리스 전사가 죽음을 택한 순간

죽음의 출구… 1,000명의 그리스 전사가 죽음을 택한 순간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막대한 군대를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 앞에 당도했을 때, 곧 벌어질 일을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소수의 그리스인들이 그의 진로를 부분적으로 막아서고,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병사들—헤로도토스는 150만 명이라 기록한다—에게 굴욕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배신자 에피알테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를 피바다의 교착 상태에서 구해줄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불행하게도 배신의 늪에 빠진 그리스인, 트라키니아 출신의 에피알테스였다. 그는 페르시아의 금화를 대가로 적들에게 아노파이아 오솔길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그때까지 페르시아군은 이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크세르크세스는 즉시 '불멸의 군단', 즉 정예 근위대의 지휘관 히다르네스 장군에게 밤사이 2만 명을 이끌고 진군하여 다음 날 아침 협곡의 그리스 수비대 후방에 나타나라고 명령했다. 계획은 그렇게 실행되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 역시 그리스 탈영병 티라스티아다스를 통해 배신 소식을 접하게 된다.

레오니다스의 결단

이제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결정을 내렸다. 그와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은 협곡에 남는다. 나머지 그리스 연합군은—페르시아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한 400명의 테베 병사들을 제외하고—철수한다. 스파르타인들과의 공동 결정에 따라, 데모필로스가 이끄는 700명의 테스피아이 전원도 함께 죽기로 했다. 또한 예언자 메기스티아스는 아들을 먼저 돌려보낸 뒤 스스로 스파르타 왕의 곁에 남았다.

'죽음의 출구'

밤이 깊어가는 동안 히다르네스의 부대는 에피알테스의 인도를 받으며 오솔길을 따라 행군했다. 8월 20일 오전 7시경, 크세르크세스 역시 병사들에게 정면 공격을 준비시켰다. 그러나 레오니다스와 그의 병사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놀라운 속도로 1,000명의 그리스인들은 승리의 찬가인 파이안을 부르며, 첫 번째 협곡과 두 번째 협곡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수십만의 적에게 돌격했다.

이것이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죽음의 출구'였다. 적을 격파한 그리스인들은 다시 협곡 안으로 물러났다. 그곳에서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아낸 그들은 이를 격퇴했고, 심지어 적을 다시 협곡 밖까지 추격하기까지 했다. 죽어가는 영웅들은 미친 듯이 싸웠다. 창은 부러졌고, 칼은 칼집에서 뽑혀 사방으로 죽음을 흩뿌렸다.

살아 있는 죽은 자들은 네 차례에 걸쳐 페르시아의 인해전술을 격퇴했다. 그 참화 속에서 레오니다스가 전사했다. 페르시아군은 그의 시신을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병사들은 적의 시도를 분쇄하고 죽은 왕을 되찾았으며, 그 과정에서 크세르크세스의 두 형제마저 죽여버렸다!

포키스 성벽 뒤, 마지막 언덕

그러나 바로 그때 히다르네스가 부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살아남은 그리스인들은 즉시 서둘러 후퇴하여 이른바 포키스 성벽 뒤편의 작은 언덕 위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곳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오직 테베 병사들만은 황급히 항복을 택했다.

부러진 창과 꿰뚫린 방패, 칼을 들고, 아직 적의 뜨거운 피가 묻어 있는 채, 그리고 각자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자신들의 피로 젖은 채, 테르모필레의 그리스인들은 종말을 기다리며 대열을 이루었다.

페르시아군은 영웅들을 포위했다. 화살 비가 쏟아졌고, 모든 것이 끝났다. 야만인들은 무기를 들어 그들을 마무리하는 것조차 감히 하지 못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끝났다. 야만인들은 마침내 통과했다. 수비대 전원이 쓰러졌고, 그들은 크세르크세스의 병사 2만 명 이상을 죽이며 싸워냈다.

그러나 곧 영웅들의 피는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에서 그 값어치를 증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