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8세가 서거한 지 불과 20년 만에, 비잔티움 제국은 소아시아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말했습니다. 요새화된 도시들만 겨우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마저도 튀르크인들의 느슨한 포위망 아래 놓인 형편이었습니다.
바페오스 전투(1301): 처참할 만큼 부족했던 2,000명
1301년, 니코메디아 인근 바페오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제국은 오스만의 위협에 몰린 소아시아의 중요 도시를 구원하기 위해 고작 2,000명의 병력만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휘관은 대장군(메가스 코미스) 게오르기오스 무잘론이었습니다.
무잘론 군대의 절반은 알란 용병이었고, 튀르크 측 역시 불과 5,000명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알란 용병들이 싸우지조차 않으면서 비잔티움군은 패배했습니다. 다행히 피해 자체는 크지 않았는데, 패잔병들이 견고하게 요새화된 니코메디아 성 안으로 후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스만 제국을 '낳은' 첫 승리
이론적으로 이 전투는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터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바로 이 승리가 오스만 제국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스만 세력이 제국군을 상대로 거둔 첫 번째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손쉬운 승리는 튀르크인들에게 자신감과 적에 대한 경멸심을 심어주었습니다. 한편 이 전투는 비잔티움의 약체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동시에, 강력한 병력조차 갖추지 못한 오스만의 취약함도 함께 보여줍니다. 당시 제국에 1만 명의 정예 병사만 있었다면 오늘날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제국의 쇠퇴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비티니아에 자리한 헬레니즘의 오랜 대도시들을 방어하기 위해 튀르크에게 보낼 수 있는 병력이 고작 2,000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내전에 짓밟힌 소아시아 방어 계획
비잔티움 사료에 따르면, 1320년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는 특히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고, 이 재원으로 3,000명 규모의 군대 창설을 추진했습니다. 이 중 1,000명은 소아시아 영토에, 나머지는 유럽 영토에서 활동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손자 안드로니코스 3세와의 갈등이 황제의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내전 기간 내내 소아시아 영토는 튀르크의 손바닥 위에 방치되었습니다. 두 팔라이올로스 황제가 왕좌를 두고 다투는 동안, 튀르크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진격했습니다. 1326년에는 오스만 튀르크가 10년에 걸친 공성전 끝에 부르사(Bursa)를 함락하고 수도로 삼았습니다. 안정된 거점을 확보한 그들은 소아시아 전역의 비잔티움 영역에서 파괴적인 약탈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펠레카논 전투(1329): 마지막 희망
이러한 급변에 직면한 새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는 친정(親征)을 결심합니다. 황제는 대장군(메가스 도메스티코스)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와 함께 고작 2,000명의 정규군과 상당수의 비정규병을 이끌고 소아시아로 건너갔습니다. 1329년 6월 10일, 이 군대는 술탄 오르한이 이끄는 8,000명의 오스만군과 조우했습니다. 튀르크군은 경기병 300명을 내보내 비잔티움군을 계속 괴롭혔습니다.
하루 종일 전투는 실질적 성과 없이 소란스럽게 흘러갔습니다. 비잔티움군은 목적, 즉 일종의 군사적 무력 시연을 달성했다고 판단하고 철수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튀르크군이 공격해왔고, 황제는 다리에 화살을 맞았습니다. 안드로니코스의 부상은 곧바로 혼란과 공포로 번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잔티움군은 네 개의 방진으로 나뉘어 간신히 후퇴했습니다. 튀르크군은 이들을 추격해 한 개 부대를 붙잡아 궤멸시켰고, 비잔티움 진영마저 점령했습니다.
소아시아 운명의 봉인
인근 요새의 이름을 딴 펠레카논 전투(인근 작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필로크리네 전투라고도 불림)는 비잔티움이 소아시아에서 오스만을 정면으로 맞선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시도였습니다.
바페오스 전투 때와 마찬가지로, 비잔티움군은 4배에 달하는 튀르크군을 상대로 실질 병력 2,000명으로는 승산이 없었습니다. 이 패배 이후 소아시아의 운명은 사실상 봉인되었습니다. 소아시아 주민들은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많은 이들이 튀르크에 귀순해 그들의 편에서 싸웠습니다. 튀르크인들은 비잔티움식 통치 체계를 받아들여 티마르(timar)를 봉신들에게 분배했으며, 그중에는 개종한 비잔티움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