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중세 해전이 특별히 어려웠던 이유
고대와 중세 시대의 해전은 결코 쉬운 작전이 아니었다. 화살과 투사무기가 오가는 난전 끝에 적선끼리 서로 접근해 충돌(ramming)을 시도하거나, 선원들이 직접 적함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여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낮에도 극도로 까다로워 뛰어난 항해술과 숙련된 조작 기술을 요구했다. 하물며 밤에는 위험성이 배가되었기 때문에, 심야에 해상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그 드문 예외 가운데 하나가 바로 880년, 비잔티움 제국과 아랍 함대 사이에 벌어진 케팔로니아 해전이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아글라브 왕조와도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연안 경보망이 포착한 아랍 함대 60척
아랍 세력은 제국 영토를 향해 수시로 해상 약탈을 감행했다. 어느 날, 연안 곳곳에 설치된 초기 경보 네트워크(비글라, vigla)를 통해 아랍 함대 60척이 접근하고 있다는 긴급 소식이 전해졌다. 역사가 요안니스 스킬리체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이 배들은 모두 "매우 거대한" 배들이었다고 한다.
즉각 새로 임명된 함대 사령관, 이른바 '드룽가리오스'(최고 사령관) 나사르가 출항 명령을 내렸다. 그의 함대는 메토니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비잔티움 사령관은 뜻밖의 위기와 마주한다. 바로 노젓꾼들의 집단 탈영이었다.
'강철 주먹' 나사르와 황제의 분노
하지만 곧 모든 이들은 사령관의 강력한 통제를 실감하게 되었다. 질서와 규율이 신속히 회복되었고, 펠로폰네소스 테마(주)의 병사들이 함대에 추가로 보강되었다. 한편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바실리우스 1세 마케도니아 황제가 30명의 사라센 포로들을 히포드롬(경마장)에 집합시키고, 얼굴을 검게 가리게 한 뒤 채찍으로 징벌한 끝에 처형하라고 명령하기까지 했다.
방심한 아랍군을 덮친 야간 기습
한편 아랍 약탈대는 상대 함대가 내부 혼란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세가 등등해졌다. 많은 아랍인들이 해안에 상륙해 방심한 채 마음껏 약탈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사르 역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적이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그는 즉시 공세에 나섰다.
비잔티움 함대가 아랍 선단 부근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해는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랍인들은 나사르 함대의 접근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밤중 기습에 완전히 놀라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의 불에 타버린 아랍 함대
비잔티움 군은 강력한 비밀병기 그리스의 불(액체 화염)로 적함을 불태웠다. 아랍 함대는 궤멸적으로 파괴되었고, 펠로폰네소스 해안에 발을 디뎠던 아랍 약탈대 역시 완전히 섬멸당했다.
대승을 거둔 나사르는 함대를 이끌고 남부 이탈리아로 향해, 그곳에서 아랍군과 교전 중이던 프로코피우스와 레오 아포스티피스 장군을 지원했다. 이어진 해상 전투에서 그는 아랍 함대를 상대로 또 한 차례의 대승을 거두며 명성을 굳혔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노젓꾼들의 집단 탈영은 역사적 역설이자 하나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비잔티움 육·해군에서 이런 무질서 사건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 번째는 노젓꾼들이 도망친 아랍계 노예였다는 설이다. 황제가 사라센인들을 가차 없이 처형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모든 혼란이 적을 방심하게 만들려는 나사르의 치밀하게 연출된 계책이었다는 해석이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그 결과는 비잔티움의 화려한 야간 대승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