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고된 듯한 함락
카르페니시(Karpenisi)는 그리스 민주군(DSE) 산하 남부그리스 총사령부(KGANE)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이 공격은 위신 세우기, 강제 징병, 그리고 약탈을 노리고 감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카르페니시에 대한 공격은 결코 청천벽려 같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리스 육군은 충분히 짐작하고 대비할 수 있었음에도, 실수와 방관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결국 도시는 DSE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카르페니시 함락 소식은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전환이 이미 확실하게 그리스 육군(HA)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파파고스(Alexandros Papagos) 총사령관의 즉각적인 대응은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한 반격 명령이었다.
병력과 작전 계획
그러나 혹독한 기상 조건 때문에 반격은 곧바로 실행되지 못했다. 1월 29일에야 파파고스는 도시 탈환 작전을 제1군단과 그 사령관인 차칼로토스(Thrasyvoulos Tsakalotos) 중장에게 맡겼다.
차칼로토스가 지휘한 병력은 다음과 같았다. 본토그리스 최고군사사령부(ASDSE) 및 후일 아그리니오 전술본부 산하 제15보병사단(제45·제71·제73 보병여단), 서부지구사령부(DTT) 산하 제1·제2 산악특공중대(MOK), 제39경보병연대(LIP), 그리고 제581보병대대(TO)였다.
작전 계획은 라미아(Lamia)와 아그리니오(Agrinio) 양방향에서 동시에 공세를 개시하여 도시를 해방하고 반군을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작전을 인수한 차칼로토스는 다음과 같은 일일 명령을 하달했다.
"무리(반군)에 대한 타격은 이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가든 쫓아가 사냥할 것이다. 펠로폰네소스에서 우리 부대는 40일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그들을 추격해 왔다. 이 추격전으로 그들은 완전히 꺾였고 매일같이 항복하고 있다… 우리는 밤이든 낮이든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 Th. 차칼로토스"
바로 이 시기부터 "밤낮없는 사냥"이라는 기본 전술이 확립되었다. 차칼로토스는 더 이상 어떤 부대도 고정 진지에 묶어두지 않았다. 모든 부대는 적이 나타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즉시 추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했다.
반대편: KGANE의 전력
한편 KGANE이 보유한 전력은 다음과 같았다. 사령관 카라기오르기스(Karagiorgis) 직속 본부중대(120명), 장교학교(130명), 지오티스(Giotis)의 제1사단(사령중대 50명 포함, 자카리아스(Zacharias)가 이끄는 제138여단 640명과 바테코스(Batekos)가 이끄는 제192여단 590명), 디아만티스(Diamantis, 얀니스 알렉산드루)의 제2사단(사령중대 50명 포함, 올림피시오스(Olympisios)가 이끄는 제172여단 590명과 아타나시오스(Athanasios)가 이끄는 제144여단 650명) 등이었다.
총 병력은 약 2,800명에 달했다. 반군은 최근의 연속된 승리로 사기가 매우 높았다. 무엇보다 그들 손에 카르페니시가 들어와 있었으니까다.
반격 개시
1월 29일~30일 밤부터 라미아와 아그리니오에서 사단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눈이 1.5m를 넘는 극한의 기상 조건 속에서 부대들은 끊임없이 고된 행군을 이어갔다. 라미아에서 출발한 부대(제45보병여단)는 로비에스(Rovies)와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Ag. Georgios) 고지를 거쳐, 반군의 지배를 18일간 받아온 카르페니시에 2월 8일 마침내 입성했다. 아그리니오에서 출발한 사단들 역시 29일부터 30일에 걸쳐 프랑기스타스(Frangistas) 고지를 점령하고 동진을 계속했다.
라미아와 아그리니오 양쪽의 정부군이 합류하는 데 성공하자, 반군은 대열을 여럿으로 나누어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월 19일까지 정부군은 반군이 바르두시아(Vardousia) 산괴로 탈출하는 것을 막으려 애썼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차칼로토스는 특공대를 선봉으로 세워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혹독한 기상 조건 탓에 포위망을 완전히 닫아 반군을 궤멸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도주와 추격전
자신들이 궤멸 위기에 몰렸음을 깨달은 반군은 아그라파(Agrafa) 방면으로의 도주를 결심했다. 2월 22일에는 양동 작전으로 리도리키(Lidoriki)를 공격한 뒤 마침내 아그라파에 도달했다. 그러나 2월 28일 아침 그들의 위치가 발각되면서, 제45사단과 특공 중대들에 의한 추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반군은 일시적으로는 도주에 성공했지만, 결국 패자였다. 심각한 인명 손실을 입었고 무기 상당수를 잃었으며, 무엇보다 더 이상 어디에도 발붙일 만한 거점이 없어졌다.
'조용한 추격' 전술과 KGANE의 해체
카르페니시 탈환 이후 차칼로토스는 '조용한 추격(silent pursuit)' 전술을 적용했다. 하필 겨울철, 그것도 본디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의 작전이었다.
이러한 은밀하고 집요한 추격 전법은 이 정도 수준의 공세적 작전에 익숙하지 않던 반군 지도부를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차칼로토스는 적에게서 이동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았고, 강제 징병과 같은 전략 임무의 수행을 봉쇄했으며, 반군의 지속적인 소모와 조직 붕괴를 유도했다.
결국 차칼로토스는 KGANE을 완전히 해체시켰고, 그 잔여 병력만이 간신히 그라모스(Grammos)와 비치(Vitsi)에서 다른 DSE 부대와 합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