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선, 하나의 위기
기원전 480년, 본토 그리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이끄거대한 페르시아 군대의 침공으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었다. 한편 대그리스(남부 이탈리아~시칠리아) 지역에서도 헬레니즘 세계는 아밀카스가 지휘하는 막강한 카르타고 군대의 공격 앞에 칼날 위에 선 처지였다.
당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고, 도시 히메라도 그 영향권에 두고 있었다. 시라쿠사이의 참주 게론은 카르타고 세력을 섬에서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기원전 483년에는 카르타고의 동맹이던 히메라의 참주 테릴루스를 축출했다. 축출된 테릴루스는 카르타고에 개입을 요청했고, 이것이 거대한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맞서는 두 군대
3년 뒤인 기원전 480년, 마침내 카르타고 군대가 시칠리아에 상륙했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용병으로 구성된 무려 30만 명 규모의 군단으로, 이베리아·사르디니아·이탈리아·갈리아, 그리고 물론 카르타고 본토와 북아프리카 출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병력은 각종 선박 3,200척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함대를 통해 섬으로 운송되었다.
이 군대의 핵심은 그리스 중장보병(호플리테스)과 흡사한 방식으로 싸우는 카르타고의 아프리카 부대였다. 이베리아인들은 그리스의 펠타스트(경장창병)처럼 느슨한 대형으로 싸웠다. 사르디니아인, 켈트이베리아인, 갈리아인들은 돌진력으로 유명했지만 중장비와 진영의 결속력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카르타고군은 중기병과 경기병은 물론 전차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그리스 측에서는 시라쿠사이의 참주 게론이 장인이자 아크라가스의 참주 테론과 함께 5만 5천 명의 병력(보병 5만, 기병 5천)을 이끌었다. 이들은 주로 시민 호플리테스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전 경험이 풍부한 그리스 호플리테스와 이탈리아·시칠리아 출신 용병들, 그리고 다수가 펠타스트 방식으로 싸우는 경장병들이 더해졌다.
시칠리아를 덮치는 카르타고군
아밀카스는 시칠리아에 도착해 오늘날 팔레르모인 파노르무스에 거대한 군대를 상륙시켰다. 그러나 해상 이동은 순탄하지 않았고, 전차와 말을 실은 배 대부분이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는 불길한 징조였으며, 훗날 전환이 결정적으로 기울게 된 원인이 되었다. 게론 역시 약 200척의 함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카르타고 함대와의 정면 충돌을 감행할 만큼 자신 있지는 않았다.
상륙 직후 아밀카스는 병사들에게 사흘간의 휴식을 허락한 뒤, 해안 도로를 따라 히메라를 향해 진격했다. 함대는 육군의 움직임에 맞춰 따라붙었다. 당시 테론은 병력과 함께 성 안에 있었는데, 적에게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가 패배하여 성벽 안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히메라 성은 이메라 강 서안, 높이 약 100m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남쪽 경사면만 완만할 뿐 나머지는 가팔랐다. 지형을 살핀 아밀카스는 성 남쪽에 진영을 구축하라고 명령했고, 함대는 연안에 정박해 그곳에 또 하나의 진영을 세운 뒤 울타리와 말뚝으로 요새화했다.
이후 다수의 카르타고 선박이 사르디니아와 아프리카로부터 보급품을 실어오기 위해 출항했다. 아밀카스는 성을 완전히 봉쇄하지는 않았지만, 군대 일부는 주변 지역을 잔혹하게 약탈했다. 그러나 그 사이 게론과 그리스군이 도착해 강가 근처에 진영을 치고 있었다.
결정적 계기를 만든 한 통의 편지
그리스 기병은 약탈과 조달에 나선 적들을 여럿 사살하고 생포하기까지 했다. 아밀카스에게는 이에 맞설 기병이 없었다. 그는 셀리누스 동맹국들에게 기병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카르타고 사자는 그리스군에게 붙잡혔고, 편지는 게론의 손에 넘어갔다. 게론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정면 대치로는 압도적인 카르타고 대군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기지 작전에 나섰다.
용기와 창, 그리고 불꽃
게론의 계획은 이렇다. 자신의 기병을 카르타고 진영에 동맹군인 척 보내 적함에 불을 지르게 하고, 동시에 보병으로 성 남쪽의 적진을 강공한다는 것이었다. 게론의 계획은 정확히 실행되었다.
기병들은 저녁에 이동해 새벽녘 해변의 카르타고 진영 앞에 나타났다. 경계병들은 속아 그리스 기병을 진영 안으로 들여보냈다. 히메라의 그리스인들은 적진에 들어가는 기병대를 발견하고 게론에게 알렸다.
게론의 군대가 접근하는 것을 본 카르타고군은 진영을 빠져나와 전투 대형을 갖추었다. 게론은 병사들에 대한 확신을 갖고 즉시 공격에 나섰다. 전투는 치열했고, 수적 열세에 그리스군은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 기병이 개입했다.
그리스 기병은 해안 진영의 카르타고군을 기습해 베어버린 뒤 적선에 불을 질렀고, 곧바로 정면에서 게론과 싸우고 있던 아밀카스의 군대를 배후에서 공격했다. 완벽한 함정이었다. 불타는 배에서 치솟는 화염과 함께, 그리스군이 정면과 측면에서 광적인 기세로 밀어닥치자 카르타고 군대는 완전히 붕괴했다. 병사들은 각자 살 길만 찾았고, 결속과 질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밀카스는 그리스 기병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헤로도토스는 카르타고 지휘관이 군대의 궤멸을 보고 자결했다고 기록했다. 반면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 등 다른 고대 사료들은 그가 그리스인들의 손에 죽었다고 전한다. 어느 쪽이든 아밀카스의 죽음은 공황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나 카르타고군의 최정예인 아프리카 원주민 부대와 이베리아인들은 일시적으로 재정비하여 반격에 나섰다. 전투가 끝났다고 여긴 많은 그리스 병사들이 적진을 약탈하는 중이었다. 이때 테론이 성에서 출격하여 적의 측면과 후방을 타격하며 국면을 구원했다.
완승
그리스군은 진영에 불을 질렀고, 수많은 적이 산 채로 불타 죽었다. 아직 저항하던 적들조차 마침내 도주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불타지 않은 배를 찾아 바다로, 또 일부는 주변 언덕으로 달아났다.
바다로 도피한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언덕으로 피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스군이 포위하고 섬멸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군의 최소 절반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도주에 성공한 배들 중 상당수도 폭풍우에 침몰했다고 한다.
역사의 분수령
히메라 전투는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대립은 이후 3세기간 이어졌지만, 그리스인들은 이미 지중해의 초강대국 중 하나와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2007~2008년에는 이 전투 전사자들의 집단 매장지가 해당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시라쿠사이의 참주 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