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마르티로폴리스, 서기 588년… 비잔틴 제국의 극적인 역습

마르티로폴리스, 서기 588년… 비잔틴 제국의 극적인 역습

서기 588년은 비잔틴 제국의 운명에 있어 결코 유쾌한 해가 아니었다. 황제 모리키우스의 연이은 실책으로 소아시아 주둔군은 움직임을 멈춰 섰고, 새로 임명된 장군 프리스쿠스는 지휘권을 제대로 인수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 군대는 레바논 지방 페니키아 속주의 공작(Dux) 게르마누스를 새 지휘관으로 추대했다. 한편 모리키우스 황제는 필리피코스 장군에게 지휘권을 넘기라는 명령을 이미 내려둔 상태였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산조 페르시아는 혼란을 틈타 비잔틴 영토를 침공했고, 콘스탄티아(메소포타미아의 안티오키아, 오늘날 튀르키예 비란셰히르)를 공격해 왔다.

1,000명으로 포위를 풀어내다

지원군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게르마누스 장군은 직접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 지휘에 나섰다. 그리고 겨우 1,000명의 병력을 재편성하는 데 성공했는데, 놀랍게도 이 부대만으로 콘스탄티아의 포위를 돌파해냈다. 역사가 테오필락토스 시모카테스가 남긴 기록이다.

이어 4,000명의 비잔틴 부대가 페르시아 영토를 기습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 사이 황제의 특사가 진영에 도착해 오해가 풀렸고, 군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마르티로폴리스로 북상

이후 게르마누스는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는 군을 이끌고 북쪽의 마르티로폴리스(오늘날 튀르키예 실반)로 진격해 사산조가 지배하던 아르자네네 속주를 침입했다. 페르시아는 즉각 대응해 해당 지역의 군사령관 마루자 장군을 파견했다.

게르마누스는 병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더 개연성 높게는 의도된 전략 때문인지 마르티로폴리스 방향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습적인 역습을 감행, 비잔틴군이 이미 패주했다고 믿고 있던 페르시아군을 기갑하게 몰아쳤다.

완벽한 승리와 처참한 결과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마루자의 군대는 완전히 와해되었고, 마루자 본인과 수많은 지휘관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3,00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이들 가운데 1,00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전사했다.

승리 후 게르마누스는 페르시아 장군의 머리와 노획한 군기를 '도시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콘스탄티노플로 보냈다. 혼돈 속에서 시작된 원정은, 한 명의 지휘관의 냉철한 판단과 과감한 역습으로 화려한 승리로 돌아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