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예수는 왜 십자가에 못 박혔나? 교수형이나 맹수형이 아니었던 이유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가 아니라 올가미나 찢긴 튜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십자가형이었을까요? 그 답은 로마인들의 엄격하고 체계적인 법 제도에 있습니다. 로마는 죄목과 피고인의 신분에 따라 정해진 형벌을 기계적으로 적용했고, 역사적 예수에게 내려진 형벌이 바로 십자가형이었습니다.

로마의 종교적 관용과 기독교 박해의 정치적 본질

제국주의적 팽창과 정복 전쟁을 일삼았음에도 로마는 종교적 관용으로 유명했습니다. 다신교 체제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데 개방적이지만,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는 타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는 질서와 평화를 지키고, 세금을 납부하며, 황제의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기만 하면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파스타파리아니즘)', '마라도나(마라도나 교회)', '스타워즈(제다이즘)', 'UFO(라엘리안 무브먼트)' 그 무엇이든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만 박해받았을까요? 초기에는 로마도 기독교를 유대교 내의 한 분파로 여겨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력이 커지자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국가가 공인한 다른 신들을 거부하고,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광신적인 태도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제국의 단결을 해치는 위협'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종교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문제였습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죄목 역시 '이탈죄(crimen maiestatis)', 즉 반역죄였습니다.

종교 재판에서 정치 재판으로: 산헤드린에서 빌라도까지

나사렛 예수는 처음에 산헤드린(유대교 최고 의회)에서 신성모독죄로 사형(율법상 돌팔매질)에 처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는 로마 속주였고, 사형 집행권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있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종교 죄목으로는 로마 법정에서 가벼운 처벌에 그칠 것을 알고, 죄목을 '선동 및 자칭 왕 행세(반역죄)'로 바꿔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빌라도는 이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낫다")대로 짜인 각본임을 간파하고 석방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렉스 율리아 마에스타티스(Lex Julia lesae maiestatis)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로마법이 정한 사형 방식과 십자가형의 의미

로마법은 죄목과 신분에 따라 다양한 사형 방식을 규정했습니다. 중죄인이자 속주민(로마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신분이었던 예수에게 적용 가능한 최상급 형벌(summa supplicia)은 십자가형(crucifixio), 화형(crematio), 맹수에게 던져주는 형(damnatio ad bestias)이었습니다.

왜 십자가형이 선택되었을까요? 십자가형은 반체제 인사와 반란자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공개적인 수치이자 공포의 광고'였습니다. 신분제가 엄격한 로마에서 십자가형은 로마 시민에게는 금지되고 노예와 외국인에게만 허용된 가장 비천한 형벌이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때 크라수스가 포로 6,000명을 아피아 가도에 십자가에 못 박아 노예들의 경각심을 일깨운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십자가형은 공개된 장소에서 수일간 지속되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처형장은 성 밖 통행로에 있었고, 수형자는 가로나무(patibulum)를 짊어지고 가야 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식초'는 사실 '포스카(posca)'였다

요한복음 19장에 따르면 예수께서 "목마르다" 하시자 병에 든 식초를 해면에 적셔 우슬초 대에 매어 입에 대드렸고, 마시신 뒤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식초 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포스카(posca)입니다. 포스카는 물에 식초나 저질 포도주를 섞어 만든 음료로, 가난한 시민들과 원정 중인 로마 군단병들의 주된 음료였습니다. 맛은 형편없었지만 값이 싸고, 이미 발효돼 상할 염려가 없으며, 물의 살균 효과까지 있어 군대에서 필수적이었습니다. 예수를 지키던 로마 병졸들이 마시는 음료가 바로 포스카였으니, 현장에 '식초 병'이 아니라 '포스카 병'이 있었던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