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 전투의 시작
1941년 4월 6일, 독일의 일방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요새 전투(Battle of the Forts)'는 그리스 군사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 항전이었다. 동마케도니아를 방어하던 그리스군은 상상을 초월하는 용맹함으로 싸웠다. 그리스 진형의 중심은 제14보병사단(MP)이 맡았으며, 이들은 서쪽의 시디로카스트로(Sidirokastro) 지구와 동쪽의 카라다그(Karadag) 지구, 두 개의 복합 진지로 병력을 배치했다.
카라다그 지구는 게오르기오스 살바노스(Georgios Salvanos) 대령이 지휘했다. 그는 전쟁 직전 에피루스(Epirus)의 카치미트로(Katsimitro)에서 제8사단(MP) 소속으로 복무했던 용맹한 장교였다. 지구의 병력은 약 4개 보병대대 규모에 제7포병대(포 2문)와 85mm 포 1문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페르세크(Persek), 바바조라(Babatzora), 말리아가(Maliaga), 페리토리(Perithori), 파르탈루스카(Partalouska) 요새를 관할했다. 이 병력은 서부와 동부 두 개의 소구역으로 나뉘어 배치되었다.
동부 소구역은 크라사나키스(Krasanakis) 중령의 지휘 아래 I/73 보병대대, 기관총 2정으로 증강된 II/73 소속 1개 중대, 매복 중대 2개, 그리고 예비대인 기관총 소대(기관총 4정)를 둔 10/73 중대로 구성되어 말리아가, 페리토리, 파르탈루스카 요새를 담당했다. 독일군의 주공은 바로 이 동부 소구역에 집중되었고, 마주한 적은 독일군 제72사단이었다.
독일군의 공격
독일군은 1941년 4월 6일 오전 5시 15분, 최후통첩이 만료되어 공식적으로 개전하기도 전에 포격 준비조차 없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후 전투는 전면전으로 확대되었고, 독일군은 페리토리 요새를 무력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다음 날인 4월 7일, 독일군은 I/73 대대 1개 중대를 몰아내고 스타브로스 언덕(해발 746m)의 저항 거점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바로 그리스군의 역습이 이어져 독일군은 패주했고, 언덕은 다시 그리스군의 손에 넘어왔다. 페리토리 요새에 대한 독일군의 모든 시도 또한 피로 물들며 좌절되었다.
4월 8일, 독일군은 다시 요새를 공격해 위기를 몰아왔다. 그러나 부상자 운반병까지 가세한 수호병들의 서사시 같은 역격에 오히려 적은 완패했고, 요새는 사수되었다. 그러나 이날은 민족의 명운이 걸린 날이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군을 완전히 붕괴시킨 독일군이 도이라니 호수(Lake Doirani) 서쪽의 그리스 영토로 침입하면서 전 전선이 포위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따라 테살로니키 함락이 다음 날로 다가오자, 동마케도니아군(TSAM) 사령관은 육군총사령부의 승인을 받아 독일군과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포성은 멎지 않았다.
일리아드를 방불케 한 역격
카라다그 지구에서는 독일군 1개 중대가 말리아가와 페리토리 요새 사이의 술라(Sulla) 언덕으로 침투해 그곳을 지키던 그리스 전투 분견대를 축출했다. 그러나 즉각적인 그리스군의 역격으로 해당 독일군 중대는 궤멸당했고(80명 전사, 5명 포로), 언덕은 탈환되었다. 또 다른 독일군 부대는 페리토리와 파르탈루스카 요새 사이로 파고들어 쿠리(Kouri) 언덕의 그리스 기관총 조(기관총 2정)를 제압한 뒤 인근의 그리스 152mm 포병 진지를 공격했다. 포수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포를 남긴 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살바노스 대령은 지체 없이 역습을 조직했다. 보병 소대 3개와 기관총 소대(기관총 4정)를 규합하고, 포병 지휘관 두로(Douro) 대위가 이끄는 포병대와 함께 독일군에게 돌진한 것이다. 이 역습은 마치 일리아드(Iliad) 한 페이지에서 뛰쳐나온 듯했다! "에라(Aera, 바람이다)!"라는 구호가 대기를 진동시키고, 그리스군은 창검을 들고 적진으로 돌진해 적을 짓밟았다. 독일군 대대는 와해되었고, 대대장을 비롯해 102명이 포로로 잡혔다!
요리사와 사무원의 마지막 반격
그러나 독일군은 새벽녘 크레스티(Cresti) 언덕을 통해 그리스군 후방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살바노스는 즉시 사용 가능한 모든 병력, 즉 요리사와 사무원, 참모 보좌관까지 규합하고 포 2문의 화력 지원을 받아 즉각 역격을 명령했다. 첫 번째 역습으로 독일군의 진출이 제한되었고, 그리스군의 연속 공격이 이어지며 결국 독일군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한 그리스군은 250명의 포로를 생포했다.
주목할 점은 살바노스가 이미 그날 오전부터 테살로니키 함락과 항복 협상 진행 소식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상급 지휘부에 항복할 의사가 없으며 병력을 이끌고 해안 방향으로 돌파를 시도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부하들을 이끌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독일군의 포위에 몰려 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장 해제에 앞서 그는 부하들을 무장한 채 대열을 지어 세레스(Serres)로 행진하게 했고, 모두가 함께 국가를 부른 뒤 영예로운 무기들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