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부디카 vs 수에토니우스: 기원후 61년, 전투 직전 울려 퍼진 두 지휘관의 장엄한 연설

전투에 임하기 전 지휘관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길고 힘찬 연설을 펼치는 모습은 고대 전쟁의 전형이자, 영화 한 장면처럼 극적인 광경입니다. 기원후 61년, 이케니족의 여왕 부디카와 로마령 브리타니아 총독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사이에 바로 그런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전투 당일 아침, 수에토니우스는 새벽 일찍 일어나 호민관들로부터 반군이 눈앞에 진을 쳤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앞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늘어선 방대한 적진이 펼쳐져 있었고, 그 뒤에는 승리를 확신한 브리튼인들이 임산부와 아이들을 위한 피난처로 삼은 전차 행렬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와 카이사르의 전법을 두루 익힌 수에토니우스는 이 배치가 오히려 브리튼족을 진짜 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임을 간파했고, 병사들을 고전적인 이중선 대형으로 정연하게 배치했습니다.

부디카 vs 수에토니우스: 기원후 61년, 전투 직전 울려 퍼진 두 지휘관의 장엄한 연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약 50년 후, 역사가 타키투스는 부디카가 군대에 남긴 연설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로마인의 오만과 자만으로부터 안전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신성한 것을 짓밟고 우리 처녀들의 순결을 더럽힐 것입니다. 전승 아니면 죽음, 그것이 여자로서 나의 선택입니다. 남자들이 살면서 노예로 사는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수에토니우스 역시 병사들에게 힘실린 연설했습니다.

"저 야만인들의 함성을 무시하십시오. 그들 중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습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니며 제대로 된 무장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을 격파해 본 바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철갑과 용기를 목격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어깨를 맞대고 서십시오. 창을 던진 뒤 전진하고, 방패로 적을 밀어낸 다음 칼로 마무리하십시오. 전리품은 잊으십시오. 승리만 하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에토니우스는 대열을 정비한 채 적의 공격을 기다렸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로마식 전술을 알지 못했던 브리튼군은 몇 시간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는 적진을 지켜본 끝에 마침내 최전선으로 돌진했습니다. 좁은 협곡 지형은 함성을 지르며 밀려오던 브리튼 돌격대의 규모를 줄여버렸고, 로마 최전선에서는 창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일단 꽂히면 방패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창은 버터에 꽂히는 핀처럼 무방비한 원주민들의 몸을 관통했습니다. 두 번째 창 세례가 지나갈 무렵, 협곡 앞에는 시체와 죽어가는 자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제 전진할 때였습니다. 글라디우스를 든 로마 군단병들은 흔들림 없이 브리튼군을 압박하며 방패벽 너머로 그들을 베어냈고, 측면에서 기병대가 돌격해 패주하는 적을 전차 쪽으로 몰아붙였습니다. 반란군이 와해된 뒤에도 군단의 무자비한 진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날 4만 명이 넘는 브리튼인이 짓밟혀 죽었으며,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학살이 끝났을 때는 사망자가 거의 8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브리튼인들이 스스로 세운 전차 방벽이 도피 경로를 막는 댐 역할을 하며 참상을 한층 가중시켰습니다. 이 전투는 로마령 브리타니아 역사상 가장 유혈 낭자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며, 남녀노소를 불문한 원주민들이 학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