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이자 영광, 1822년 페타 전투
1822년 7월 4일 벌어진 페타 전투는 1821년 그리스 혁명 기간 그리스군에게 가장 참담했던 전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영광스러운 전투이기도 했다. 정규 그리스 병사들과 소수의 친그리스(필헬레네) 지원병, 이오니아 제도 출신 병사들은 오스만군이 곧 밀려와 자신들을 덮칠 것을 알면서도, 영웅적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싸움을 벌였다. 약 600명의 정규군과 이오니아인, 필헬레네 부대를 이끈 것은 독일 출신 장군 카를 노르만(Karl Norman)이었다.
필헬레네 부대의 서사시
필헬레네 부대가 배치된 구역에서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전투가 펼쳐졌다. 두 개의 필헬레네 중대는 각각 나폴레옹 전쟁의 베테랑 장군인 스위스 출신 슈발리에(Chevalier)와 폴란드 출신 프란치셰크 미에르제프스키(Franciszek Mierzewski)가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스군 진영이 무너진 뒤에도 노르만의 병사들은 끝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미에르제프스키 휘하의 13명 폴란드인은 그리스를 위해 자신들만의 서사시를 써 내려갔다.
교회 안에서 벌어진 최후의 백병전
이 용감한 병사들은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성 게오르기오스) 교회 안으로 몸을 숨기고, 탄약이 남아 있는 한 오스만군과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결국 오스만군이 교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전투는 건물 내부에서 이어졌다. 창, 단검, 검, 주먹, 이빨, 심지어 교회 지붕에서 뜯어낸 기와까지 무기로 삼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했다. 그들은 바닥에 수십 구의 적 시체를 널브러뜨린 채 모두 전사했다.
모니아크 대위와 언덕 위의 필헬레네들
프랑스 출신 필헬레네 대위 모니아크(Moniac)는 다리에 치명상을 입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올리브나무 줄기에 몸을 기댄 채 검으로 오스만 병사들을 계속 베어 넘겼다. 검이 부러진 뒤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등 뒤에서 총탄을 맞았고, 몸을 돌린 순간 적의 창이 우수수 꽂혀 그의 몸은 갈기갈기 찢겼다. 또 다른 소수의 필헬레네들은 언덕 위에 진지를 잡고 목숨을 값비싸게 팔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영웅적으로 싸우다 모두 쓰러졌다.
"모든 것이 잃었다, 명예만은 아니고"
부대의 군기를 든 젊은 프로이센(베를린) 출신 빌헬름 티히만(Wilhelm Teichmann)은 오스만군의 일제 사격과 검격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는 오스만군 총탄에 찢겨나간 군기를 움켜쥔 채 깃대를 창처럼 휘두르며 끝까지 싸웠고, 그렇게 전사했다.
부대장인 뷔르템베르크 출신 장군 노르만 역시 몸이 찢길 정도의 중상을 입었으나 간신히 탈출하는 데 성공해, 페타 원정을 주도한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Alexandros Mavrokordatos)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모든 것이 잃었다. 명예만은 아니고…" 노르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상처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