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쿠루스 작전(Unternehmen Merkur)"이라는 암호명으로 수행된 독일의 공수 작전, 바로 크레타 전투가 있은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1941년 5월 20일 시작된 이 작전은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을 상대로 벌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중 점령 작전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공수 작전 중 그 규모와 성격 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많은 '첫 번째'를 기록한 사건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을 결정지은 핵심 국면 중 하나였던 크레타 전투는, 전쟁 이전과 이후의 전개 과정,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려는 오늘날의 시도까지 포함해 지금도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를 묻고 있습니다. 80주기를 맞아 진행된 이 깊이 있는 토론에서는 크레타와 그리스, 나아가 전쟁의 세계사적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켰던 잘 알려진 순간들과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역사적 장면들을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토론의 주요 주제
지중해 정세와 방어 계획
영국의 지중해 및 크레타 정책(1935~1941)을 비롯해, 케팔로니아에서의 이탈리아 공군 작전과 코린토스 운하에 대한 독일군의 공수 작전을 살펴보고, 이것이 크레타 전면 점령 작전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분석합니다. 아울러 독일군이 같은 형태로 벌인 마지막 작전인 레로스 섬 침공, 그리고 "공중 대 해양"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크레타 전투의 전쟁 기술 대결까지 다룹니다.
"인종 전쟁"이라는 이름의 이념
크레타 전투 당시 독일 병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이념적 배경, 이른바 "인종 전쟁"의 실체를 짚어봅니다.
알바니아 전선의 크레타 사단
알바니아 전선에서 테펠레니(Tepeleni)를 지키며 처절하게 희생된 크레타 사단의 운명, 그 희생에 대한 귀환 요청의 좌절, 그리고 아테네에 고립된 크레타 보병들의 비참한 최후—굶주림, 라리사 수용소 행, 집단 총살—까지 조명합니다.
방어권 이양과 연합군의 현실
1940년 11월부터 그리스 정부가 크레타 방어를 영국에 '위임'한 배경과, 영국이 섬의 방어 조직화에 보였던 태도를 살펴봅니다. 또한 그리스 본토에서 간신히 철수한 뒤 거의 무장도 되지 않은 채, 조직 없이 크레타로 파견된 뉴질랜드와 호주 부대의 상황—그리고 영웅적으로 싸우다 쓰러진 수많은 병사들—을 회고합니다.
손실의 규모와 철수라는 선택
실제로 의미 있는 상관관계들과 영국군의 손실 규모, 독일군의 엇갈린 판단과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막대한 피해를 비교 분석하고, 왜 크레타 철수가 늘 영국의 최우선 선택지였는지에 대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정치적 동요와 두 번째 '오오히'
국왕과 추데로스 총리, 그리고 크레타에 '정권'을 수립하려던 시도를 살펴보고, 당시의 정치적 동요가 크레타 주민들의 침략 저항 봉기와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분석합니다. 1940년 10월 28일 무솔리니의 최후통첩에 대한 그리스의 첫 번째 '오오히(OXI, 아니오)'에 이어, 섬 주민들의 봉기는 역사에 남은 두 번째, 그리고 한층 더 우렁찬 '오오히'로 기록됩니다.
독일군의 전쟁 범죄
크레타 전투 중과 이후에 자행된 독일군의 전쟁 범죄를 다룹니다. 무장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영웅적으로 참여한 '전 주민 봉기'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신기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크레타 전투 첫날부터 시작되어 1941년 가을까지 이어진 시민 집단 총살—31건의 집단 학살로 약 2,000명이라는 비극적인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특히 독일군이 크레타 시민들의 처형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세 가지 야만적인 나치 '원칙', 즉 비대칭 보복의 원칙, 집단 책임의 원칙, 전투원과 민간인의 구분을 폐지하는 원칙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마을마다 남은 순교의 기록
군인과 일반 주민들이 함께 방어에 나섰던 섬 곳곳의 도시와 마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순간들을 되새깁니다. 플로리아와 파랑기(Farangi) 지역 전투의 결과로 파괴된 칸다누(Kandanou), 그리고 전후 독일 낙하산 부대가 세운 이른바 '수치의 기념비'도 함께 다룹니다.
칼리 시키아(Kali Sykia)와 칼리크라티스(Kallikratis) 학살과 견줄 만한 비아노스(Viannos) 지역의 대학살, 켄테루스(Centerus) 마을들의 학살, 아노게이아(Anogeia) 학살, 말라티로스(Malathyros), 사르코스(Sarchos), 다마스타(Damasta), 마라토스(Marathos), 소카라(Sokara)에서의 집단 총살, 헤라클리온에서의 62명 순교자 처형, 그리고 보리지아(Vorizia), 구르놀라고스 조니아논(Gournolakos Zonianon), 카마레스(Kamares), 로크리아(Lochria), 사흐투리아(Sakhtouria), 스쿠르블라(Skourvoula), 코사레(Koxare), 쿠스토게라코스(Koustogerako), 수기아(Sougia), 차니아 수도원, 리바다(Livada), 토플루 수도원, 시티아(Sitia) 등 크레타의 수많은 마을과 곳곳에서 자행된 나치의 범죄들을 기억합니다.
'잊게 만드는' 프로젝트와 배상 문제
역사의 재구성을 통한 '망각의 프로젝트', 그리고 독일의 그리스 국민에 대한 배상 채무라는 영원한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묘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제시됩니다.
출연진
- 요르고스 마가리티스(Giorgos Margaritis):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AUTH) 근현대사 교수
- 코스타스 마말라키스(Kostas Mamalakis): 역사 연구자, 크레타 역사박물관 근현대사 분야 학술 협력 연구원
- 얀니스 스칼리다키스(Yannis Skalidakis): 역사학자, 크레타 대학교 정치학과 교육진
- 사란토스 테오도로풀로스(Sarantos Theodoropoulos): 변호사, 그리스 점령기 기록·문서 연구자
- 트리안필리아 코스토풀로우(Triantafyllia Kostopoulou): 심리학자, 베를린 독일 배상 이니셔티브 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