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4월, 독일군의 그리스 침공이 본격화되던 시기. 독일군이 클리디스 방어선을 돌파한 순간, 그리스군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클레이수라(Kleisoura) 협곡을 사수해 독일군이 카스토리아로 직접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북에피루스에서 이탈리아군과 아직 교전 중이던 그리스군 부대들이 철수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지형과 방어 준비
클레이수라 협곡은 카스토리아 호와 헤이마디티다 호 사이, 아민타이오-카스토리아 도로에 위치해 있다. 중앙마케도니아군사령부(TSCM) 소속 그리스 제20보병사단은 이미 4월 10일, 보병 대대 2개, 산악포병 1개 중대, 공병 분견대를 협곡으로 파견해 최선을 다해 방어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클레이디스 전투 이후 후퇴하던 사단 예하 부대들도 이곳으로 집결했다. 결국 4월 14일, 협곡은 보병 대대 4개, 기관총 대대 1개, 은폐 중대 2개, 그리고 정작 박격포가 없는 보병박격포 중대 1개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병력은 강력한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규모였다.
현실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보병 대대들은 정원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고, 탄약은 바닥났으며, 대전차포는 없었고, 포병은 겨우 75mm 산포 8문뿐이었다.
첫 번째 공격
그러나 독일군은 그리스 부대들이 이미 엉성하게 구축된 진지에 배치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4월 13일 오후부터 공격이 시작되었고, 첫 표적은 I/87보병대대가 방어하던 해발 1,386m 고지(사고니차)였다.
이 대대는 곧바로 제1SS기갑연대의 공격을 받았고, 지역 전체를 담당하는 독일 포병의 화력 지원까지 받는 상황이었다. 대전차 무기를 하나도 보유하지 않은 그리스 보병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헛된 싸움이었다. 5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I/87대대는 와해되고 말았다.
손실은 막대했다. 약 30%의 병력이 포로로 잡혔고, 나머지 대부분은 전사했다. 소수만이 탈출해 해발 1,597m 고지에 새 진지를 구축했다. 진지의 즉각적인 붕괴는 III/80보병대대의 영웅적인 역습으로 간신히 저지되었다. 이 대대는 독일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적을 그 자리에 묶어두어 더 이상의 움직임을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대대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 개 중대가 독일군의 집중 포격으로 궤멸당한 것이다.
두 번째 공격
4월 14일 새벽 4시 30분, 독일군은 전력을 보강한 뒤 공격을 재개했다. 이번 표적은 제6기관총대대가 진지를 잡은 다울리 능선이었다. 그러나 이 대대가 보유한 것은 단 10정의 낡은 기관총, 그리고 총당 2,000발에 불과한 탄약뿐이었다. 이 대대는 창설 이후 운송 수단을 하나도 지급받지 못했고, 치명적으로도 이전의 후퇴 과정에서 병사들이 모든 무기와 탄약을 운반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리스 산악포병 두 부대 역시 탄약이 거의 바닥나 있어, 전투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었다. 독일군은 중포격의 지원을 받으며 제6기관총대대를 향해 돌격했다. 동이 트자 슈투카 폭격기 수십 대까지 가세했다. 적 전차들은 어떤 대전차 무기의 위협도 받지 않은 채 그리스 진지로 접근해, 안전한 거리에서 그리스 기관총 진지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제6기관총대대는 5시간 동안 적의 압력을 버텨냈다. 독일 전차들이 말그대로 방어진지를 짓밟고 통과할 때까지 버틴 것이다. 그런데도 대대 병사들은 또 한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싸우며, 독일 전차들을 쫓아다니며 호위 독일 척탄병들을 겨냥했다.
그러나 결국 현실의 벽은 높았다. 생존 병사들은 무기를 내려놓았다. 항복 당시 이 대대는 모든 탄약을 소진한 상태였고, 작동 가능한 중화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전투를 계속한다는 것은 용감한 병사들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상황이었다. 그리스 방어선에 돌파구를 여는 데 성공한 독일군은 이어서 섹터 내 나머지 그리스 부대들도 공격했다.
영웅적인 III/80대대는 마지막 탄약이 떨어지고 독일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뒤 차례로 항복했다. II/80대대만이 밤사이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마저도 적의 포격과 공습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그리스 육군의 마지막 노래
장비와 병력 모두 열세인 그리스 부대들이 스무 시간 동안 영웅적으로 싸운 끝에 클레이수라 협곡의 그리스 방어선이 붕괴한 것은, 그리스 육군의 백조의 노래였다. 독일군이 시아티스타와 코자니로 이어지는 길을 열면서 북에피루스의 그리스군은 구원될 어떠한 희망도 잃었다.
클레이수라는 그리스군의 명예를 보여준 또 다른 전투였다. 그리스 병사들의 필사적인 저항은 독일군 자신들조차 감탄하게 만들었고, 그리스 육군을 전쟁포로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독일군의 명예로운 결정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