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왕비를 뽑는 기준은 오늘날과 사뭇 달랐습니다. 대개 정치적·경제적 동맹이 최우선 과제였고, 개인의 자질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왕실의 미래 왕비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의외의 기준이 사용되었는데, 바로 이름이었습니다.펠리페 2세 아우구스투스(프랑스 국왕), 장 1세(잉글랜드 국왕), 그리고 알폰소 8세(카스티야 국왕)는 삼자 협정을 체결하며, 훗날 프랑스 왕이 될 루이 8세를 알폰소 8세의 미혼한 두 딸 중 한 명과 혼인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잉글랜드 왕은 두 공주 모두에게 관심이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