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을 지키되, 문은 닫지 않았던 나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스웨덴 정부는 공식적으로 연합국도, 추축국도 지원하지 않는 철저한 중립 정책을 견지했습니다. 덕분에 스웨덴 본토는 전쟁 중 벌어진 전투에 직접 휘말리는 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립'이 곧 '무관심'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피하던 유대인들에게 스웨덴은 실질적인 피난처 역할을 해냈습니다.
나치 독일에서 피신해 온 유대인 난민들
전쟁 이전과 전쟁 기간 내내 스웨덴은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탈출한 유대인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총 약 2,000명의 유대인 난민이 스웨덴 입국을 허가받았으며, 이들 대다수는 이후 스웨덴에 영주하며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문전박대당한 세인트루이스호 승객들에게 열린 출구
스웨덴은 다른 국가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유대인 난민들에게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세인트루이스호(SS St. Louis) 사건입니다.
1939년, 유대인 난민 900여 명을 태운 여객선 세인트루이스호는 미국에서 입항을 거부당하고 유럽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때 스웨덴이 승객 일부를 수용하겠다고 나섰고, 그중 약 250명이 최종적으로 스웨덴에 정착하여 목숨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부모 곁을 떠나온 유대인 아이들을 위한 보금자리
스웨덴은 어린이들에게도 망명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전쟁 발발 전 몇 년 사이, 부모들이 홀로 안전한 곳으로 먼저 떠나보낸 유대인 아동들이 스웨덴에 도착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대개 스웨덴 현지 가정에 위탁되거나 아동 보호 시설에서 지냈으며, 스웨덴어를 배우고 학교에 다니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중립의 그늘과 빛
전쟁의 포화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스웨덴의 이러한 인도적 조치는 나치의 학살 위기에 처했던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생명의 희망이 되어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