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어느 한 가지 사건 때문이 아니라, 여러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며 쌓여간 결과였습니다. 당시까지 '중립국'의 입장을 고수해 온 미국은 독일의 일련의 도발적인 행동과 국내 여론의 변화 속에서 점차 전쟁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 (1915년)
1915년 5월, 독일 U-보트(잠수함)가 영국의 대양 여객선 루시타니아호(Lusitania)를 격침시켰습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선원 1,198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미국 시민 128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거센 여론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전쟁 개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크게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치머만 전보 사건 (1917년)
1917년 1월, 영국 정보기관이 독일 외무성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낸 비밀 전문인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를 가로채 해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보에는 독일과 멕시코가 연합하여 미국에 맞서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 대가로 멕시코가 과거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상실한 영토를 되찾도록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이 폭로가 공개되자 미국 여론은 더욱 격분했고, 전쟁 개입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재개 (1917년 초)
1917년 초 독일이 채택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 정책은 사전 경고 없이 미국 상선마저 격침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과 미국 간의 갈등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직접 충돌 단계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전쟁 선포로 이어진 종합적 배경
이러한 사건들에 더해,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와의 경제적 유대 관계가 깊어져 있었으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군주제·권위주의 체제의 독일에 맞서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1917년 4월 6일, 독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