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잔티움이 거둔 마지막 해전 승리
에키나데스 해전은 비잔티움 제국이 거둔 마지막 해상 승리였습니다. 전투의 양측은 디미트리오스 라스카리스 레온타리오스가 지휘하는 제국 함대와, 레프카다·자킨토스·케팔로니아 및 서그리스를 다스리던 라틴 왕조의 카를로 1세 토코(Carlo I Tocco)가 이끄는 함대였습니다.
펠로폰네소스를 둘러싼 각축
15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랑크인들의 펠로폰네소스 정복은 이미 과거의 유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스트라스 전제공국이 펠로폰네소스 대부분의 영토를 탈환하며 세력을 확장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토코 가문은 여전히 펠로폰네소스에 야심을 품고 있었으며, 모레아의 마지막 라틴 통치자였던 센투리온 자카리아(Zacharias)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1423년, 교전 중이던 세력들은 오스만 제국에 맞서기 위해 임시 휴전을 체결했지만, 오스만 장군 투라한(Turahan)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튀르크 군대가 철수하자마자 미스트라스의 전제공 테오도로스 2세 팔라이올로고스는 즉시 자카리아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쟁의 발발과 양측 함대
이 사건을 계기로 카를로 토코는 자신이 소유하고 거점으로 삼았던 글라렌차(Glarenza)에서 일리아(Ilia) 지역의 비잔티움 세력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고, 1426년에는 양측 간의 전쟁이 공식적으로 발발했습니다. 펠로폰네소스에 직접 머물며 상황을 지휘하던 황제 요안니스 8세 팔라이올로고스의 주재 아래, 비잔티움군은 육해 양면에서 동시에 도시 포위 작전에 나섰습니다.
이에 맞선 카를로 토코는 자신의 영지에서 함대를 소집하여 서자 토르노(Torno)에게 지휘권을 넘겼습니다. 다만 이 함대의 정확한 구성과 선박의 수, 종류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디미트리오스 라스카리스 레온타리오스가 지휘하는 비잔티움 함대가 출동했는데, 제국 함대 역시 그 규모와 편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결정적 승리와 그 여파
양측 함대의 전력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없는 가운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황제 마누일 2세 팔라이올로고스에게 바쳐진 장엄한 연설문을 통해 전해지는 전투의 결과뿐입니다. 에키나데스 제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토코의 함대는 완전히 궤멸했습니다. 병사 대부분이 전사했고 최소 15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지휘관 토르노 토코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포로의 규모로 미루어 볼 때, 양측이 운용한 선박의 수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 승리가 남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에키나데스 해전의 패배는 토코 가문의 펠로폰네소스 정복 야망을 사실상 좌절시키는 결정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토코의 조카 마다레나(Maddalena)와 결혼한 콘스탄티노스 팔라이올로고스—훗날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인물—는 혼수의 일환으로 글라렌차를 받게 됩니다.
펠로폰네소스 통일의 발판
후방이 안정된 팔라이올로고스 왕조는 베네치아가 장악한 지역을 제외한 펠로폰네소스 전역의 해방 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로 1430년에는 파트라(Patras)마저 탈환하며, 비잔티움은 한때 잃었던 반도 대부분을 되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에키나데스 해전은 제국의 마지막 해상 승리였을 뿐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재통일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투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