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과 함께 고조된 독일인에 대한 적대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호주에 거주하던 독일 국민들에 대한 적대감이 급격히 고조되었습니다. 영국과 동맹 관계였던 호주는 '적성 외국인(enemy alien)'으로 분류된 독일인들에게 각종 제재와 차별을 가했으며, 그 피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삶 전반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1. 강제 억류(수용)
전쟁 발발 직후 호주에 살던 수천 명의 독일인 남성들이 억류되었습니다. 이들은 국적만을 이유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어 뉴사우스웨일스주 홀즈워디(Holsworthy),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토렌스아일랜드, 서호주 로트네스트아일랜드 등 호주 곳곳의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호주 내에서 억류된 독일계 및 오스트리아계 인원은 약 7,000명에 달했으며, 여기에는 영국령 식민지에서 송환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 강제 추방
일부 독일 국민들은 호주에서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특히 독일 제국의 적극적인 지지자로 판단되거나 반영국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3. 재산 몰수
호주 정부는 독일인 거주자들이 소유한 농장, 사업체, 금융 자산 등을 압수하고 몰수했습니다. 세대를 거쳐 일궈온 재산이 법적 절차 없이 또는 최소한의 보상만으로 빼앗기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4. 사회적 낙인과 차별
이 시기 독일인들은 심각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직면했습니다. 언어적·신체적 폭력의 표적이 되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 사회에서는 독일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불매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게르만톤(Germanton)처럼 독일식 이름을 가진 지명들이 영어식 이름으로 바뀌었고, 루터교 학교들도 폐쇄 압력을 받았습니다.
5. 귀화 취소
정부는 전쟁 이전에 이미 시민권을 취득했던 많은 독일 출신 호주인들의 귀화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수십 년간 호주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법적으로 '외국인' 신분으로 되돌려질 수 있었습니다.
모든 독일인이 같은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독일인들이 나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호주에 거주하며 가족을 이루고 현지 사회에 깊이 융화된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고조된 감정과 '충성심' 논리 속에서 독일 국민 전체를 향한 사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적대적이었습니다.
전쟁 이후의 행방과 재정착
전쟁이 끝난 후 많은 독일인 억류자들은 독일로 송환되었지만, 일부는 호주에 남아 새로운 삶을 다져나갔습니다. 전쟁 중 겪은 극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일인들이 결국 다시 호주 사회에 통합되었으며, 이후 이 나라의 문화적·경제적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전시 민족주의가 이민자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