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Archduke Franz Ferdinand, 1863~1914)은 기록상 사생아를 두었다는 알려진 사례가 없습니다. 그의 사생활은 비교적 단순했으며, 가문을 이룬 배우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조피 호테크와의 결혼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보헤미아 출신 백작가문의 딸인 조피 호테크 폰 호트코우 운트 보그닌(Sophie Chotek von Chotkow und Wognin) 여공작과 결혼했습니다. 이 혼인은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분 규정에 따라 귀천상혼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아내 조피와 자녀들은 황실의 정식 칭호와 황위 계승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대신 '호헨베르크(Hohenberg)'라는 별도의 귀족 칭호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네 명의 적출 자녀
두 사람 사이에서는 모두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 장녀 소피 공주(Princess Sophie)
· 엘리자베트 공주(Princess Elisabeth)
· 장남 막시밀리안 공자(Prince Maximilian)
· 차남 에른스트 공자(Prince Ernst)
즉,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모든 자녀는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적출이며, 사생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주장은 확인된 바 없습니다.
사라예보 사건과 유산
1914년 6월 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부인 조피와 함께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격을 받고 부인과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공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도 호헨베르크 가문의 후손으로서 각자의 삶을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