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비극, 그 이전의 여섯 번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이 암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지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성공적인 암살 이전에도 대공의 목숨을 노린 시도는 최소 여섯 차례 있었습니다. 이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음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젊은 보스니아'와 '검은 손'의 음모
암살 계획은 범슬라브주의 독립 운동 단체인 '젊은 보스니아(Young Bosnia)' 소속 청년들이 주도했으며, 세르비아 민족주의 비밀결사 '검은 손(Black Hand)'이 무기와 훈련 등을 지원했습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합병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고, 대공의 사라예보 방문을 결정적인 기회로 삼았습니다.
행진로 곳곳에 배치된 암살자들
암살 당일, 여러 명의 젊은 암살자들이 대공 부부의 차량이 통과할 예정이었던 길목 곳곳에 미리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배치된 몇몇 암살자들은 군중 속에서 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실행에 나서지 못했거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실패했습니다.
수류탄 투척, 그리고 불운한 실추
오전 10시경, 네델코 차브리노비치(Nedeljko Čabrinović)가 대공의 차량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폭발물은 자동차에서 튕겨 나가 뒤따르던 차량 근처에서 터졌고, 대공 부부는 놀랍게도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차브리노비치는 즉각 체포되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운명적인 잘못된 방향 전환
수류탄 공격 이후 대공은 부상자를 문병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운전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차량이 멈춰 섰고, 그 자리는 바로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서 있는 곳이었다. 프린치프는 이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총을 발사해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를 연달아 저격했고, 두 사람은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여섯 번의 실패가 바꾼 세계사
만약 이전 시도들 중 하나라도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 여섯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성공한 이 암살은 불과 한 달여 만에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고,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극의 서막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