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앙리 4세(Henri IV le Grand, 1553년 12월 13일 ~ 1610년 5월 14일)는 1572년부터 1610년까지 나바라 왕국의 왕으로 재위했으며, 1589년부터 1610년까지는 프랑스의 국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부르봉 왕조 최초의 프랑스 국왕으로, '앙리 대왕(Le Grand)'이라는 칭호로도 불립니다.
개신교 지도자로 성장한 왕
앙리는 어린 시절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신앙으로 자랐으며, 프랑스 종교전쟁 기간 동안 위그노파(Huguenot)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 간의 격렬한 종교 갈등으로 혼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왕위 계승과 가톨릭 개종
1589년 전임 국왕 앙리 3세가 암살되자 앙리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지만, 그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앙리는 1593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파리는 미사 한 번 값어치가 있다'는 유명한 일화로도 전해지며, 정치적 현실주의의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낭트 칙령과 종교전쟁의 종식
1598년 앙리 4세는 낭트 칙령(Édit de Nantes)을 반포하여 프랑스 내 개신교도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신앙의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했습니다. 이 조치는 수십 년간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종교전쟁을 마무리 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근대 초반 종교 관용의 선례로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