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가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한 뒤 '스스로 한 발 물러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에게 통치권을 넘겨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가리발디가 자발적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강력한 외교적 압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정복지를 내어놓았던 것입니다.
남부 이탈리아를 손아귀에 넣다: 천인대원정
1860년 가리발디는 '천인대원정'이라 불리는 원정을 이끌고 시칠리아에 상륙해 부르봉 왕조의 군대를 연파했고, 이윽고 나폴리까지 진입하여 양시칠리아왕국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로써 이탈리아 반도 남부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고, 가리발디는 새로 정복한 지역의 운명을 쥔 최강자가 되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경계한 두 가지 변수
①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공화주의에 대한 우려
가리발디는 평생 공화주의 신념을 품은 혁명가였습니다. 그가 정복지를 기반으로 공화제 정부를 세운다면, 이는 곧 유럽 각국의 왕정 체제에 큰 충격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혁명의 물결에 극도로 민감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공화주의가 대륙 전역으로 번지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고, 이를 막기 위해 가리발디의 세력을 기존 왕정 국가 안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밀어붙였습니다.
②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위험, 그리고 베네치아 문제
베네치아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가리발디가 남부 정복에 그치지 않고 북진하여 로마나 베네치아까지 노린다면, 강대국 오스트리아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했습니다. 유럽의 균형을 무너뜨릴 대규모 전쟁을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는 가리발디의 추가 원정을 저지했고, 그 결과 그의 정복지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에 귀속되는 형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테아노 회담: "나는 복종합니다"
1860년 10월, 가리발디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테아노에서 회담을 가졌고, 가리발디는 양시칠리아왕국에 대한 통치권을 왕에게 이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이탈리아 왕 만세!"를 외쳤다고 전해지며, 왕이 그를 해방자로 칭송하고 관대한 대우를 약속하자 그는 단 한마디로 화답했습니다. 바로 "Obbedisco(나는 복종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후 시칠리아와 나폴리에서는 피에몬테 편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남부 이탈리아는 공식적으로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면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초대 이탈리아 국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정리
결론적으로 가리발디의 '물러남'은 고결한 희생정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공화주의 확산을 경계한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적 압박, 그리고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피하려는 열강의 계산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정복의 성과를 왕정 국가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개인적 야심보다 통일 이탈리아라는 대의를 앞세운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는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