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사조 아래 태평양 연안까지 영토를 넓히며 서쪽으로 급속히 확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한 유럽계 정착민들은 기존에 그 땅에 살던 여러 문화 집단과 잦은 충돌을 빚었고, 그 결과는 토지 상실, 강제 이주, 차별과 배제라는 깊은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갈등의 중심에는 크게 세 집단, 즉 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계 주민, 중국인 이민자가 있었습니다.
1.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서부 확장으로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집단은 단연 아메리카 원주민입니다. 정착민들의 끊임없는 이주는 원주민의 전통적 영토를 잠식했고, 이는 무력 충돌과 강제 이주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비극으로 체로키족 등이 군사적 압박 속에 서쪽으로 내몰린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리틀 빅혼 전투, 샌드 크릭 학살, 운디드 니 학살 등 원주민과 미군·정착민 사이의 충돌이 수십 년간 이어졌습니다.
갈등을 겪었던 주요 부족
- 아파치(Apache)
- 아라파호(Arapaho)
- 블랙피트(Blackfeet)
- 샤이엔(Cheyenne)
- 체로키(Cherokee)
- 치카소(Chickasaw)
- 촉토(Choctaw)
- 코만치(Comanche)
- 크릭(Creek)
- 다코타(Dakota)
- 델라웨어(Delaware)
- 휴런(Huron)
- 일리노이(Illinois)
- 이로쿼이(Iroquois) 연합
- 라코타(Lakota)
- 메스콰키(Meskwaki)
- 모독(Modoc)
- 모호크(Mohawk)
- 나바호(Navajo)
- 네즈퍼스(Nez Perce)
- 오네이다(Oneida)
- 오논다가(Onondaga)
- 오타와(Ottawa)
- 포니(Pawnee)
- 피쿼트(Pequot)
- 포타와토미(Potawatomi)
- 사크·폭스(Sac and Fox)
- 세미놀(Seminole)
- 세네카(Seneca)
- 쇼니(Shawnee)
- 쇼쇼니(Shoshone)
- 수우(Sioux)
- 터스커로라(Tuscarora)
- 왐파노아그(Wampanoag)
- 위네바고(Winnebago)
- 와이언도트(Wyandot)
이 가운데 코만치와 샤이엔은 대평원에서, 아파치와 나바호는 남서부에서 특히 강력하게 저항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다코타와 라코타는 넓은 의미의 수우(Sioux) 민족에 속하는 분파입니다.
2. 멕시코 국적자(멕시코계 주민)
1846년부터 1848년까지의 멕시코-미국 전쟁 이후 미국이 캘리포니아, 텍사스, 남서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면서, 이 지역에 오래 살아온 스페인계·멕시코계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소수자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 칼리포르니오(Californios): 멕시코령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던 스페인계 후손으로, 골드러시를 계기로 밀려든 미국인들 사이에서 목장과 토지를 잃고 법적·정치적 권리도 축소되었습니다.
- 테하노(Tejanos): 멕시코령 텍사스에 거주하던 멕시코계 주민으로, 텍사스 독립과 미국 합병 과정에서 박해와 재산 몰수, 정치적 배제를 경험했습니다.
3. 중국인 이민자
1850년대 골드러시와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계기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가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반발과 인종적 편견 속에서 격렬한 배척 운동에 직면했습니다. 1885년 와이오밍주 록스프링스에서 발생한 중국인 학살 사건과 같은 폭력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마침내 1882년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이 제정되어 중국인 노동자의 이민이 법으로 막혔습니다. 이는 특정 민족의 이민을 금지한 최초의 미국 연방법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맺음말
요약하면, 미국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주한 유럽 정착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멕시코계 주민(칼리포르니오, 테하노), 그리고 중국인 이민자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서부 확장의 영광 뒤에는 이들 집단이 치른 대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역사는 오늘날 미국 사회의 다문화 논의와 원주민 권리 회복 운동에도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