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0월,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세 나라는 이집트를 대상으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수에즈 위기(Suez Crisis)' 또는 '제2차 중동전쟁'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방대한 외교 문서와 군사 기록으로 남아 있을 만큼 명확하게 검증된 실제 전쟁이었으며, 20세기 중동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도화선이 된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대통령은 서구 자본이 운영해 온 수에즈 운하 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는 당시 세계 무역의 핵심 동맥이었고, 특히 영국은 석유 수송과 식민지 방위를 위해 이 운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나세르의 결정에 격분한 영국과 프랑스는 운하 지배권을 회복하고 나세르 정권 자체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세브르에서 맺어진 비밀 협약
1956년 10월, 세 나라 대표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세브르(Sèvres)에서 극비리에 회담을 갖고 이른바 '세브르 의정서'에 서명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이스라엘이 먼저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고,
② 이어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양측에 최후통첩을 보낸 뒤,
③ 이집트가 거부할 경우 운하 지역을 무력 점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습 공격의 전개 과정
계획에 따라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로 진격했고, 10월 31일에는 영국·프랑스 공군이 이집트의 공군기지들을 대대적으로 폭격했습니다. 11월 5일에는 양국 병력이 포트사이드(Port Said)에 상륙하며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강대국의 개입과 강제 철수
그러나 이 작전은 예상과 달리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미국은 경제 제재를 암시하며 즉각적인 정전을 요구했고, 소련은 군사 개입까지 시사하며 압박했습니다. 결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와 유엔 긴급군(UNEF) 파병을 거치며 세 나라는 12월까지 이집트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수에즈 전쟁이 남긴 역사적 의미
이 전쟁은 군사적으로는 이집트의 패배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나세르의 승리로 평가됩니다. 영국은 앤서니 이든 총리가 사임하는 등 중동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종언을 고렸고, 미국과 소련이 중동 정세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티란 해협 봉쇄 해제 등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시나이 반도는 유엔군의 관리 하에 이집트에 반환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의 이집트 기습 공격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대한 보복과 지역 패권 유지라는 명확한 목적 아래 세 나라가 사전에 공모하여 실행한 전쟁으로, 오늘날까지도 식민주의의 마지막 발악이자 냉전 질서의 재편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