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혁명: 격변의 서곡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씨앗은 12년 전인 1905년 혁명에서 이미 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낮은 임금에 항거하며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고, 이는 곧 전국적인 반란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병사로 구성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가 결성되었는데, 이는 이후 소련 체제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기구였습니다.
위기에 몰린 차르 니콜라이 2세는 10월 선언(October Manifesto)을 발표하여 집회의 권리, 언론·종교의 자유, 보통 남성 참정권 등 시민적 자유를 약속했습니다. 또한 입법 권한이 제한적인 의회인 '두마(Duma)'가 설립되었지만, 차르의 전제 권력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차르 체제에 가해진 무게
1914년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 영토에 대한 야망을 품고 연합국 진영에 가담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러시아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내며 고전을 면치 못했고, 물자 부족과 굶주림이 국내를 덮치면서 차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습니다.
2월 혁명: 군주제의 붕괴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성 방직 노동자들이 빵 배급과 개선된 노동 조건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 시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대규모 봉기로 발전했고, 파업 노동자들은 점차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과 손을 잡으며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결국 차르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할 수밖에 없었고, 두마는 게오르기 리보프(Georgy Lvov) 공작을 수반으로 하는 임시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300년 넘게 이어진 로마노프 왕조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볼셰비키 혁명: 10월의 포성
그러나 임시 정부는 전쟁 지속을 추진하는 등 노동자와 농민의 절박한 요구, 즉 즉각적인 평화와 빵, 토지 분배를 외면했습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망명지에서 돌아온 볼셰비키당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평화, 빵, 토지"를 외치며 사회주의 혁명을 역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17년 11월, 볼셰비키당은 무장 봉기를 통해 페트로그라드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고 임시 정부를 전복시켰습니다. 이른바 '10월 혁명'이라 불리는 두 번째 러시아 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했으며, 20세기 세계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