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서고트족(Visigoths)이 로마를 멸망시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서고트족은 로마 시를 영구적으로 파괴하지는 않았습니다. 로마를 가장 참혹하게 약탈하고 황폐화시킨 것은 455년의 반달족(Vandals)이었으며, 서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말은 또 다른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410년, 알라리크 1세의 로마 약탈
서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 1세는 410년에 로마 시를 함락하고 사흘간 약탈을 감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기원전 390년 갈리아인의 침입 이후 약 800년 만에 로마가 외부 세력에게 처음으로 넘어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만 서고트족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기보다는 재물을 약탈한 뒤 물러났고, 로마 시 자체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455년, 반달족의 잔혹한 약탈
로마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북아프리카를 근거지로 삼은 반달족이었습니다. 455년, 왕 게이세리크(Geiseric)가 이끄는 반달족 군대는 로마를 점령해 약 두 주 동안 도시를 유린했습니다. 금·은 보물과 예술품들이 대거 약탈당했고, 이 과정에서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단어가 탄생할 만큼 파괴가 극심했습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최후
서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멸망은 476년 9월 4일에 이루어졌습니다. 게르만계 용병 출신의 야만인 왕 오도아케르(Odoacer)가 어린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를 폐위시키면서, 서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수십 년간 이어진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침입은 서로마 제국에 경제적·정치적으로 치명적인 부담을 안겨왔습니다. 국경 방어는 무너지고 세수는 줄어들며 제국의 통치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마지막 황제의 퇴위는 서로마 제국의 종말을 상징하는 역사적 기점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