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미국·영국·소련 3개국 지도자는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여 전후 질서를 논의했습니다. 이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바로 폴란드와 독일의 운명이었습니다.
폴란드 국경의 재획정
얄타 회담에서 연합국은 폴란드의 동쪽 국경이 대체로 '커즌 선(Curzon Line)'을 따르도록 합의했습니다. 커즌 선은 1920년 당시 영국 외무장관 조지 커즌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폴란드와 소련 사이의 잠재적 경계선으로 제안했던 선입니다. 이로써 폴란드는 동부 영토 일부를 소련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폴란드는 서쪽으로 영토를 보상받았습니다. 오데르-나이세 선(Oder-Neisse Line)을 새로운 서쪽 국경으로 설정함에 따라, 과거 독일 동부의 광대한 영토가 폴란드에 편입되었습니다.
폴란드 임시정부 구성과 총선 약속
회담은 또한 폴란드의 정부 수립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와 소련의 지원을 받는 폴란드 공산주의 세력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해 폴란드의 최종 정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후 실제 역사에서 이 선거는 소련의 개입 속에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독일 문제에 대한 결정
1) 분할 점령과 탈나치화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이 각각 관할하는 4개 점령 지역으로 분할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나치 독일에 대한 철저한 '탈나치화(Denazification)'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여기에는 나치 법률의 폐지, 각종 기구의 개편, 주요 나치 인사들의 축출 및 기소가 포함되었습니다.
2) 배상금 문제
독일은 전쟁 중 초래한 막대한 파괴와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연합국에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배상은 주로 산업 설비와 자원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소련이 전체 배상금의 50%를 받고 나머지 50%는 다른 연합국들이 분배하기로 했습니다.
3) 전범 재판
연합국은 인류에 대한 만행을 저지른 전범들을 색출하여 처벌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위해 국제군사법정을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은 이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얄타 회담이 남긴 유산
얄타 회담에서 내려진 폴란드와 독일 관련 결정들은 전후 동유럽과 독일의 정치적·영토적 경계를 규정하며 유럽 대륙의 지정학적 지형을 수십 년간 좌우했습니다. 특히 폴란드의 국경 변경과 독일의 분할 점령은 냉전 체제의 토대가 되었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유럽의 정치 지도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