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 로마는 어떻게 공화정으로 전환되었는가?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 로마는 어떻게 공화정으로 전환되었는가?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ius Superbus)는 '오만한 타르퀴니우스'라는 뜻으로, 본명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입니다.

그러나 그가 본명으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남긴 업적이 너무도 적었기 때문입니다.

오만한 타르퀴니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로마 왕국의 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친아들이자, 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사위였습니다.

원래 5대 왕의 두 아들과 6대 왕의 두 딸이 서로 혼인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배우자들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와 툴리아가 재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툴리아가 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유혹했다는 점입니다...

툴리아는 남편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장인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원로원 앞 계단에서 밀려 떨어졌고, 이어 자객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전왕의 시신 위를 그의 친딸 툴리아가 마차로 짓밟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세계사에는 수많은 폭군이 등장하지만, 여기까지 극에 달한 인물은 드뭅니다...

이렇게 강권으로 왕위에 오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원로원 의원들을 숙청하고 공포 통치를 시작합니다.

장인이자 선대 왕이었던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장례식조차 금지했다니, 다소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부러 나쁘게 기록되도록 만들어진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원로원이나 평민회의 승인 없이 왕위에 올랐으며, 정책 자문도 구하지 않은 채 독단으로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다만 내정 면에서는 의문점이 많은 왕이었음에도, 무력 면에서는 상당히 유능해서 대외 전쟁에서는 대체로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루크레티아 사건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심각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유부녀 루크레티아를 겁탈했습니다.

루크레티아는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조카딸이었으니, 사실상 친척 관계에서 일어난 범죄였습니다...

사건 이후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심부름꾼을 보냈고, 네 명의 남성 앞에서 진실을 고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네 명의 남성만 불렀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온 나라가 반(反)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로 기울게 됩니다.

네 사람 중 한 명인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로마 중심에서 연설을 하며 타르퀴니우스 가문의 추방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민중들이 호응했고,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이렇게 로마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사건의 범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망명지에서 원한을 품은 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구원받기 어려운 인생이었습니다.

망명과 로마 포위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로마에서 추방되었지만, 권력에 대한 집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트루리아 세력과 손잡고 로마와의 전쟁에 나섭니다.

로마군은 실바 아르시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벌어진 국지전에서는 패배하여 한동안 로마가 포위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로마는 함락되지 않았고, 레길루스 호반 전투에서 타르퀴니우스 측이 최종 패배하면서 그는 희망을 잃고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 대한 개인적 평가

로마의 모든 왕들이 그렇듯, 그들의 존재와 업적은 전승에 기반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역사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 관해서라면, 개인적으로는 일부러 나쁘게 기록된 느낌이 듭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 말기의 군주는 나쁘게 기록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새로운 정권은 자체적인 정통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악한 군주를 축출했다'는 형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로마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가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후대의 로마 황제들, 혹은 중국의 황제들과 비교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