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본토에는 독일이나 폴란드,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른 나치 점령 지역에 세워진 것과 같은 대규모 강제 수용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벨기에가 전쟁의 참화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벨기에는 1940년 5월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점령되었으며, 종전까지 약 4년간 나치 통치 아래에서 큰 고통을 겪은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유대인 추방: 메헬렌에서 아우슈비츠까지
나치 당국은 벨기에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체계적으로 색출해 동부의 수용소로 이송했습니다. 약 25,000명에 달하는 벨기에 내 유대인이 메헬렌에 있던 도신 막사(Kazerne Dossin) 중계 수용소를 거쳐 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보내졌으며, 이들 가운데 생환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벨기에는 이처럼 대규모 수용소의 소재지는 아니었지만, 유대인 추방 행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브렌동크 요새: 정치범 수용소
한편 벨기에 영토 내에 수용 시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안트베르펜 인근 브렌동크에 위치한 옛 요새는 나치가 정치범 수용소로 활용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주로 저항 운동가와 정치적 반대자들이 수감되어 가혹한 심문과 고문, 강제 노동을 견뎌야 했으며, 그 잔혹함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현재 브렌동크 요새는 국립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나치 점령 시기의 참상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벨기에는 아우슈비츠와 같은 대규모 절멸 수용소를 직접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나치 점령 하에서 유대인 추방의 경유지 역할을 수행했고, 자국 영토 안에서도 정치범들을 억압하는 수용 시설을 허용하며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