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나폴레옹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남자!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육군 최고의 지휘관은 누구일까요?

이것은 논쟁이 꽤 치열한 질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육전이 주를 이루었고 무적에 가까운 지휘관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 '최강'을 가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해군 최고의 지휘관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연코, 나폴레옹조차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한 제독 호레이쇼 넬슨일 것입니다.

역사상 최강의 제독

나폴레옹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남자!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육군 지휘관을 흔히 '장군(General)'이라 부르듯, 해군 지휘관은 '제독(Admiral)'이라 불립니다.

훗날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호레이쇼 넬슨은 1758년 잉글랜드 동부 노퍽에서 목사 집안의 여섯째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훗날 '넬슨 제독'으로 유명해졌지만, 넬슨은 성(姓)이었고 이름인 호레이쇼는 그의 친척인 초대 오포드 백작 호레이쇼 월폴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영국 최초의 총리 로버트 월폴도 같은 가문 출신이라, 넬슨 가문과 월폴 가문은 먼 친척 관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넬슨이 태어난 집안은 명문가와 인연이 있었지만, 넬슨 가문 자체는 생활이 어려운 편이었습니다. 넬슨은 12세까지 학교에 다녔지만, 14세가 되기 전에 외삼촌 모리스 서클링을 따라 해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넬슨은 뛰어난 능력에 외삼촌의 후원까지 더해지면서 해군에서 놀라운 속도로 승진했습니다.

외삼촌 모리스 서클링은 7년 전쟁의 영웅으로, 1775년 해군성 장관으로 승진하여 177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립해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습니다.

넬슨 본인도 1777년 해군 장고 시험에 합격해 장교가 되었고, 1779년에는 함장에 올랐습니다. 즉, 겨우 21세의 나이로 함장이 된 것으로, 그의 승진 속도는 기준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그는 카리브해와 대서양에서 계속 활약했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프랑스군이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자 넬슨은 전함 아가멤논의 함장으로 임명되어 지중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1794년, 그는 나폴레옹의 고향이기도 한 코르시카 섬 점령 작전을 입안했고, 이 전투에서 오른쪽 눈에 부상을 입어 이후 실명하게 됩니다.

생 빈센트 곶 해전

나폴레옹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남자!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96년, 프랑스의 동맹국인 스페인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당시 지중해에는 영국 전함 15척,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전함 38척이 있었으니 그 차이는 명백했습니다. 영국은 엘바 섬과 코르시카 섬에서 철수를 강요당하며 점차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797년, 영국 함대와 스페인·프랑스 함대 간의 생 빈센트 곶 해전이 벌어집니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왕립해군은 결국 대승을 거두었고, 넬슨은 이때의 공로로 훈장을 받고 소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인 왕립해군은 일렬 종대를 배치해 가로로 길게 늘어선 스페인 함대를 분단시켰고, 넬슨은 분단된 스페인 함대 중 가장 많은 전함을 보유한 집단의 진로를 단 한 척의 배로 막아섰습니다. 마치 사자가 스페인 군함 일곱 척과 맞서 싸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스페인 군함 4척이 포획되었는데, 그중 2척은 넬슨이 직접 나포한 것이었습니다. 이 전투로 스페인 함대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영국에 유리한 전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프랑스·스페인과의 싸움을 계속 이어갔고, 스페인령이던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 전투에서 오른팔을 잃을 정도의 중상을 입습니다.

테네리페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영국인들은 그 책임을 넬슨이 아닌 작전을 입안한 윌리엄 피트에게 돌렸습니다. 넬슨이 도착하기 전부터 스페인군은 이미 철벽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작전 자체가 상당히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아부키르 만 해전

나폴레옹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남자!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넬슨은 지중해에서 임무를 계속 수행하던 중, 1798년 8월 이집트 아부키르 만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함대를 발견하고 공격합니다.

프랑스 측은 완전히 기습을 당했고, 당시 프랑스 해군 사령관이던 브뤼스 제독은 전사했으며 넬슨 역시 머리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영국은 좌초로 전함 한 척을 잃었지만, 프랑스 측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어 겨우 세 척만 남게 됩니다.

이 전투로 나폴레옹은 이집트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트라팔가 해전

나폴레옹도 결코 이길 수 없었던 남자!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이후 덴마크 왕립해군과의 코펜하겐 해전에서 활약한 넬슨은 1803년 지중해 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805년 유명한 트라팔가 해전을 지휘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동맹국 스페인의 카디스에 연합 함대가 집결했습니다. 1805년 10월, 프랑스 해군의 빌뇌브 제독이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이끌고 지중해로 진입하려 했지만, 넬슨은 이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있었고 매복에 성공합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가 된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이 고안한 '넬슨 터치(Nelson Touch)' 전술이 성공을 거두며, 왕립해군은 대서양과 지중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영국이 대서양을 통해 미주 대륙과의 무역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정책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최대 공헌자였던 넬슨은 트라팔가 해전의 격전 끝에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신께 감사드린다. 나는 내 책임을 다했다."였습니다.

넬슨에 대한 평가

호레이쇼 넬슨은 영국 역사상 최고의 영웅입니다.

일본으로 치면 도고 헤이하치로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승리는 확실한 승리였고, 이후 국익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됩니다.

나폴레옹에게 트라팔가 해전의 패배는 치명적이었고, 베를린 칙령의 실패로 그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모든 면에서 넬슨의 성공은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영국의 수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는 넬슨의 동상과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넬슨 제독이 거둔 네 번의 승리, 즉 생 빈센트 곶 해전, 아부키르 만 해전, 코펜하겐 해전, 트라팔가 해전의 공적을 기리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넬슨은 원래 왕족만 누릴 수 있었던 국장(國葬)으로 안장되었으며, 그의 죽음은 지금도 영국이 가장 존중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경건하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넬슨은 평소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며, 모든 부하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사자처럼 용맹해지고, 코펜하겐 해전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상당히 고집스러운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덴마크와의 코펜하겐 해전에서 당시 함대 사령관 파커 제독이 전투 중지 신호를 보냈지만, 넬슨은 실명한 오른쪽 눈에 망원경을 대고 "나는 신호를 볼 수 없다"며 전투를 계속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넬슨이 거둔 네 번의 해전 승리는 모두 훗날 대영제국의 번영으로 이어졌으며, 넬슨이 영국에 영광을 안겨준 인물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직접적인 대결은 없었지만, 나폴레옹은 결코 이겨 보지 못한 상대였습니다. 역사상 최강의 제독은 앞으로도 넬슨으로 결정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