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재앙! 코시우슈코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타데우시 코시우슈코는 세 나라의 영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파도가 거센 대서양에 이름 없는 백수 신분으로 생을 마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776년 봄, 유럽 거의 전역이 대서양 건너에서 벌어진 일에 숨 죽이고 있었다. 13개 미국 식민지의 주민들이 영국에 맞서 들고일어난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한 기록가는 이렇게 적었다.

"군영에서도 교회에서도, 귀족의 살롱에서도 평민의 모임에서도, 사람들은 오직 미국 독립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궁지에 몰린 실업자

그러니 막 파리에 도착한 청년 타데우시 코시우슈코가 미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합류하기로 결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미국인들 스스로 강조했듯, 그들은 무기와 화약,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병(工兵)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코시우슈코야말로 일자리가 급한 처지였다.

기사학교 사관학교에서 받은 훌륭한 군사 교육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디에서도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177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이미 폐허로 무너져 가는 중이었다. 군대는 1만 명으로 축소되었고, 코시우슈코 같은 신참을 뽑을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른 살에 가까운 이 귀족은 독일에서도 운을 시험해 보았지만, 작센 선제후의 군대에 들거나 그의 궁정에서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재앙! 코시우슈코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공병 교육을 받은 코시우슈코는 워싱턴에게 값진 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결국 미국이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의 군대가 자신 같은 전문가를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전에, 그는 먼저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필요한 준비를 마친 후 1776년 6월, 훗날 봉기군 총사령관이 될 인물은 르아브르 항에서 작은 스쿠너선에 올라타 신대륙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다른 반구로의 항해는 여전히 지루하고 위험한 원정이었다. 함께 떠난 몇몇 동료들과 코시우슈코는 곧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재앙! 코시우슈코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미국을 구하러 달려가는 슈퍼히어로 코시우슈코? 실제로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얀 브루벨의 책 『폴란드사 2.0』(Znak Horyzont, 2015) 삽화.

구원의 돛대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영국의 미국 항구 봉쇄였다. 이 때문에 유럽 용병들을 실은 배는 프랑스령 산토도밍고(오늘날 아이티)를 경유해 남쪽으로 돌아가는 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름철이면 이 해역에는 열대성 허리케인이 휩쓸었으니, 항해 전체에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예상대로, 두 달간의 항해 끝에 풍랑에 시달리던 스쿠너선은 강렬한 폭풍우를 만나 산호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다행히 코시우슈코와 동료들은 마지막 순간에 돛대를 붙잡는 데 성공했고, 온 힘을 다해 마르티니크 섬 해안까지 헤엄쳐 갔다.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재앙! 코시우슈코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바르샤바 신문 「노비니」의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신의 섭리 같은 행운이 우리 나라 시민 코시우슈코 군을 난파선으로부터 구해내 [...] 다른 폴란드인 다섯 명과 함께 돛대를 붙잡고 섬까지 헤엄쳐 목숨을 구했다."

만약 코시우슈코가 그 배와 함께 침몰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얀 브루벨이 저서 『폴란드사 2.0』에서 정확히 지적하듯, 우리의 동포는 대륙군에서 복무한 8년 동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라토가 주변의 전설적인 방어선과 웨스트포인트 요새를 축조했으며, 미국 육군 장군이 되어 미국 독립전쟁의 존경받는 영웅이 되었다."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재앙! 코시우슈코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크라쿠프 시장광장에서의 타데우시 코시우슈코의 맹세. 코시우슈코가 붙잡았던 그 구원의 돛대가 없었다면, 화가 보이치흐 코사크는 이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공병으로서의 천재성이 없었다면 영국은 반란을 진압했을까? 아마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은 분명 더 길어졌을 것이고, 식민지 주민들은 더 많은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어떠했을까? 1794년 봉기의 지휘봉을 누가 코시우슈코 대신 잡았을까? 그의 존재 없이 봉기 자체가 일어났을지조차 의문이다. 그리고 만약 일어났다면 — 우리는 그로부터 이익을 얻었을까, 아니면 손해를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