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스토르가 함락: 나폴레옹의 입성과 17개국 1,000명이 재현한 '삼국' 역사 행사

아스토르가 함락: 나폴레옹의 입성과 17개국 1,000명이 재현한  삼국  역사 행사

1808년 크리스마스, 아스토르가는 어떻게 함락되었는가

독립전쟁 발발 이후 격전이 계속되던 1808년 성탄절, 라 로마나 후작(Marqués de La Romana)이 지휘하던 스페인 좌익군은 기아와 발진티푸스로 전력이 갈수록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부대는 존 무어 경(Sir John Moore)이 이끄는 영국 동맹군과 합류하기 위해 레온 방면으로 후퇴했습니다. 산악 지대에 도달하기 전이라도 적의 공격을 받으면 퇴로가 완전히 막힌다고 판단한 무어는 아스토르가(Astorga)로의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라 로마나 후작은 연합군이 산악 지대에서 저항하여 갈리시아를 침략으로부터 지켜내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무어는 스페인 전선의 최종 패배를 확신하며 라코루냐(A Coruña)행 진군을 재개했습니다.

한편 프랑스 측에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친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808년 7월 바일렌(Bailén)에서의 패배 이후 피레네 산맥을 넘기로 결심한 황제는, 영국군과 스페인 좌익군 잔여 병력이 아스토르가와 레온에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대육군(Grande Armée)의 공세를 개시한 나폴레옹은 1809년 1월 1일 아스토르가에 입성했습니다. 이날부터 시작된 도시 약탈은 일주일간 이어지며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당시 기록은 이렇게 전합니다. "아스토르가에서는 그해의 마지막 날들이 최후의 심판의 날과 같았다."

아스토르가 함락: 나폴레옹의 입성과 17개국 1,000명이 재현한  삼국  역사 행사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상황은 혼란으로 치달았고, 영국군은 스페인군을 뒤로한 채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무어의 부대는 만사날(Manzanal)과 피에드라피타(Piedrafita)를 거쳐 라코루냐로 향했고, 라 로마나 후작과 그의 군대는 폰세바돈(Foncebadón) 길을 이용해 폰페라다(Ponferrada)를 지나 오렌세(Ourense)에 도달했습니다. 이 처절한 철수 과정에서 수백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으며, 아스토르가는 잔혹하게 유린당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 원정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불굴의 기개, 혹독한 지형, 그리고 병사들까지 사로잡은 장티푸스 유행이 원정을 속박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 정세 악화라는 소식까지 겹치면서, 황제는 1월 3일 스페인 원정을 중단하고 중부 유럽 전역에 집중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스토르가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전쟁 내내 이 도시는 두 차례의 포위전을 추가로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역사 재현: '삼국(Three Nations)' 행사

2018년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레온 역사문화 자원봉사자 협회는 아스토르가 시의회와 스페인 나폴레옹 협회의 협력을 받아 1808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삼국(Three Nations)'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이 행사에는 17개국 출신의 약 1,000명의 리인액터(역사 재연자)가 참여했습니다. 아스토르가에는 다시 한번 라 로마나 후작과 존 무어 경의 진영이 펼쳐졌고, 나폴레옹 역을 맡은 마크 슈나이더(Marc Schneider)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아스토르가 함락: 나폴레옹의 입성과 17개국 1,000명이 재현한  삼국  역사 행사

카스트리요 데 로스 폴바사레스(Castrillo de los Polvazares) 인근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 재연에는 시대별 야영지 3곳과 여러 기념 명판이 함께 마련되었습니다. 전투에서는 수년간의 연구와 고증 끝에 제작된 당시 무기와 군복의 정교한 복제품이 사용되었습니다. 행사의 절정으로 14일 일요일 오전에는 베나벤테의 에슬라 강 도하전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전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악천후로 인해 개최할 수 없었습니다.

'삼국' 방문객들은 전투 재연 외에도 도시 곳곳에 흩어진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었고, 포병과 기병 부대의 실제 행진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추모식, 학술 컨퍼런스, 연극 공연, 시대풍 무용, 야영지 및 역사 명소 안내 투어, 어린이를 위한 플레이모빌 피겨 전시 등 풍성한 보조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었습니다.

'삼국' 행사는 도시를 찾은 수천 명의 관광객과, 1808년의 성탄절을 사흘간 생생히 체험한 재연자들 덕분에 완전한 성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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