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6월, 히틀러는 소련 침공을 위한 대규모 공세인 바르바로사 작전을 동부 전선에서 개시했습니다. 지나치게 야심 찬 이 계획에 따라 독일군은 방심하고 있던 붉은 군대의 방어선을 빠르게 돌파하며 진격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서 전선은 안정되었고, 붉은 군대는 히틀러의 계획을 무산시킬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홀로 싸우고 있지 않았습니다. 북극 호송선단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슬란드와 특히 영국에서 출발한 선단들은 북극해를 건너 소련의 항구 도시인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로 향했습니다. 1941년 8월 이후 총 78개의 호송선단이 항공기 7,000대와 전차 5,000대를 포함한 무기 400만 톤, 그리고 연료·식량·의약품을 실어 날랐습니다.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에 도착한 보급품과 무기는 독일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소련 국경을 넘어 각지로 분배되어야 했습니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유일한 동반자가 얼음뿐인 이 땅에서 순록은 교통 수단의 주인공으로 나섰습니다.

1939년 말까지만 해도 북극권 소수민족(네네츠, 사미, 코미 등)는 붉은 군대에서 병역이 면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며 벌어진 겨울전쟁을 계기로 이들은 강제 징집 대상이 되었고, 불행히도 순록과 썰매가 교통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다시 전쟁터로 끌려가게 됩니다.

약 6,000마리의 순록과 600명의 목동(주로 네네츠족)이 탄약과 식량 운반, 그리고 부대 간 연락 임무를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순록 한 마리는 최대 300kg의 짐을 싣고 하루 약 50km를 이동할 수 있었으며, 하루 8시간씩 일하면서 4시간마다 휴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지옥 같은 혹한과 독일군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견뎌낸 행군 과정에서 이들은 심지어 추락한 소련 조종사를 구조해 안전하게 후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 목동과 순록 중 집으로 돌아온 것은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네네츠족 사이에는 정교한 올가미 기술(아르칸)로 독일군을 생포해 적의 정보를 확보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또한 고향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의 공습으로 흩어졌던 자신들의 순록 무리를 되찾아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이들의 헌신은 2012년 2월 23일, 나리얀마르 시에 기념비가 세워지면서 비로소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순록 목동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순록 대대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