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사(Besa): 무슬림 국가 알바니아가 나치의 박해 속에서 유대인 3,000명을 구한 명예의 전통

종교 갈등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명예와 연대, 연민의 가치는 국경과 종교의 벽을 넘어섭니다. 알바니아인의 오랜 전통 '베사(Besa)'는 바로 그러한 가치의 상징입니다. "Kiss e shqiptarit nuk shitet pazarit" — "알바니아인의 명예는 장터에서 사고팔 수 없다"는 옛 격언이 이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전쟁 전 200명에서 종전 후 3,000명으로, 오히려 늘어난 유대인 인구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알바니아는 경제와 군사 면에서 이탈리아에 의존하는 군주국이었습니다. 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점령하고 조그 1세가 망명하면서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지만, 유대인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전혀 다른 힘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될 무렵 알바니아에 거주하던 유대인은 겨우 2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무렵 그 수는 3,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나치 점령지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피난처로 택한 곳은 의외로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 알바니아였습니다. 알바니아 정부는 유대인 가족들이 일반 주민들과 뒤섞여 살 수 있도록 허위 신분 서류를 발급했고, 알바니아인들은 넉넉지 않은 자원 속에서도 자신들의 집을 내어주며 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치의 명단 요구에도 끝내 굴복하지 않은 알바니아인들

1943년, 무솔리니의 요청으로 나치 독일이 알바니아를 점령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위험해졌습니다. 유럽의 다른 점령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치는 현지 당국에 거주 유대인 명단 제출을 요구했지만, 알바니아는 끝까지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가 어째서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하는 일에 나섰을까요?

"우리는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베사일 뿐입니다." — 알바니아-이스라엘 우호 협회 사이미르 로자 교수

베사는 황금률이자 도덕률이며, 사회적 행동 규범이자 고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입니다. [...] 베사는 본질적으로 고통받거나 박해받는 사람에게 무관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알바니아인에게 정직하게 살고, 필요하다면 희생도 감수하라는 도덕적 자기 요구입니다.

베사(Besa): 무슬림 국가 알바니아가 나치의 박해 속에서 유대인 3,000명을 구한 명예의 전통

사진작가 노먼 거슈먼(Norman Gershman)이 촬영한 알리 셰체르 파슈카이(Ali Sheqer Pashkaj)는 베사 정신의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사진 속 멕시코 모자를 쓴 그는 어린 유대인 소년 야샤 바유호비오(Yasha Bayuhovio)를 구해냈습니다.

외교관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알바니아의 종교적 관용

이러한 관용은 전쟁 이전부터 이어져 온 알바니아의 전통이었습니다. 1930년대 알바니아 주재 미국 대사였던 허먼 번스타인(Herman Bernstein)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알바니아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 찾아볼 수 없다. [...] 알바니아인 자체가 세 개의 종교로 나뉘어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는 종교적 증오나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유럽에서 보기 드문 나라다.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베사: 약속(Besa: The Promise)』 예고편(Vimeo)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출처: eSefarad, WebIsl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