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마법 주문 '아브라카다브라'의 진짜 기원, 서기 2세기 로마 의학서에 처음 기록되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이 단어를 읽거나 들으면 누구나 마법과 마술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마술사들이 무대에서 이 주문을 사용했고, 지금도 활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닙니다. 정확한 유래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그 흔적은 무려 1,8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내가 말로 창조하리라'를 뜻하는 히브리어 구문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며, 다른 이들은 그리스어·라틴어·아람어의 avra gavra(내가 사람을 창조하리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합니다. 후자는 창조 여섯째 날 하나님이 선포했다고 전해지는 말씀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이 가설들을 뒷받침하는 문서나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카다브라가 문헌상 처음 등장하는 지점은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바로 서기 2세기 말부터 3세기 초, 로마 제국입니다.

마법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의 진짜 기원, 서기 2세기 로마 의학서에 처음 기록되다

서기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에게는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Publius Septimius Geta)와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바시아누스(Lucius Septimius Bassianus, 역사에는 '카라칼라(Caracalla)'로 더 잘 알려짐)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세베루스는 왕자들의 스승으로 당대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인 퀸투스 세레누스 삼모니쿠스(Quintus Serenus Sammonicus)를 임명했습니다.

삼모니쿠스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또는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역사가들이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하는 황제 전기집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Historia Augusta)에 짧게 언급된 것이 고작입니다.

그는 여러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 소실되었고, 일부는 매크로비우스(Macrobius) 같은 후대 작가의 글에서 인용된 형태로만 전합니다. 매크로비우스는 저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에서 삼모니쿠스의 레스 레콘디타에(Res reconditae)를 폭넓게 인용했습니다.

마법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의 진짜 기원, 서기 2세기 로마 의학서에 처음 기록되다

다행히 거의 온전하게 전해진 저술이 하나 있습니다. 리베르 메디키날리스(Liber Medicinalis, 의학서)라는 제목의 의학 교훈시로, 데 메디치나 프라이셉타 살루베리마(De medicina praecepta saluberrima)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헥사미터 운율 1,115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삼모니쿠스가 서기 212년 이전에 집필한 것으로, 그해가 그의 사망 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는 대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와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 그의 저술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핵심 약전 매뉴얼이 됨)에서 가져온 대중적 치료법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아브라카다브라라는 단어가 포함된 마법 공식도 등장합니다. 삼모니쿠스가 급성열병의 치료법으로 권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어를 삼각형 안에 반복해서 쓰고, 이를 부적으로 활용해 암송할 것을 권했습니다. 리베르 메디키날리스 LII장, 즉 그리스인들이 '헤미트리타이오(hemitritaeo)'라 부른 열병(말라리아)에 관한 장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당시 말라리아는 제국 여러 지역에서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의술과 마술, 미신의 경계가 오늘날처럼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반 백성들도 이런 부적의 치유력을 믿고 망설임 없이 사용했습니다. 카라칼라 황제 자신도 이 부적을 몸에 지녔다고 전해지는데, 삼모니쿠스의 제자였음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쨌든 이 관습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졌고, 훗날 중세 시대에는 대중 민속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마법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의 진짜 기원, 서기 2세기 로마 의학서에 처음 기록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마법·의학적 성격을 지녔던 이 단어는 대중 설화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용법, 즉 마법의 힘으로 무언가를 나타나게 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주문으로 말입니다.

1665년, 18개월간 이어지며 십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 대역병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카다브라를 집 문앞에 써서 재앙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습니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장면입니다. 물론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아브라카다브라는 그보다 앞선 기원을 지니기도 합니다. 원래 이 단어는 바실리데스파 영지주의자들이 영혼의 도움을 불러일으키는 데 사용했으며, '아브락사스(Abraxas)' 돌 부적에 새겨진 형태로 발견되곤 했습니다. 이 종파는 서기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Basilides of Alexandria)가 창설한 것으로, 성 베드로의 제자 클라우키아스(Claucias)에게서 교리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브락사스는 이 종파가 인정한 최고 존재였으며, 삼모니쿠스 역시 그 추종자 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덧붙여 삼모니쿠스의 저술에는 이전에 다룬 적 있는 주제도 등장합니다.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가 독사(毒死)를 막기 위해 발명한 만능 해독제 미트리다테(mitridate)인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사용된 이 신비한 만병통치약은 미트리다테스의 방에서 발견되어 폼페이우스(Pompey)에 전해졌다고 추정되는 제조법에 기반합니다.

마법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의 진짜 기원, 서기 2세기 로마 의학서에 처음 기록되다

삼모니쿠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삼모니쿠스는 카라칼라에 맞서 게타(Geta)의 편을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버지 사후인 서기 211년 2월 4일부터 공동 황제로 통치했지만, 같은 해 12월 카라칼라가 동생을 암살하면서 극이 막을 내렸습니다. 카라칼라는 이후 수많은 지지자들을 연회로 불러들였는데, 그중 삼모니쿠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 자리에서 그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이후 카라칼라는 군사 작전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로마를 떠났고, 서기 217년 사망할 때까지 다시 로마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