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토브룩 포위전의 숨은 영웅들…영국 코만도, '두 개의 스피리아' 언덕 야간 기습 작전

토브룩 포위전의 숨은 영웅들…영국 코만도,  두 개의 스피리아  언덕 야간 기습 작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끊임없이 전선이 이동하는 특징을 보였다. 1941년 7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은 리비아의 요새 도시 토브룩을 포위했다. 이탈리아군의 포위선에는 '두 개의 스피리아(Dyo Spiria)'라 불리는 언덕이 군림하고 있었다. 이곳은 서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두 개의 낮은 언덕으로, 이탈리아군은 이를 특히 강력한 방어 거점으로 재정비한 상태였다.

그 맞은편에는 인도 제18기병연대(킹 에드워드 연대)와 인도 제3기계화여단 등 두 개의 인도 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군은 이 부지에 탄약고까지 구축해 두었는데, 해당 진지는 수많은 기관총과 박격포로 방어되었고 후방에는 직접 지원 포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영국군 사령부는 이탈리아군의 탄약고와 가능한 한 많은 무기를 파괴한다는 목표 아래 기습 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임무는 크레타 전투에도 참전했던 유명한 레이포스(Layforce) 출신 부대인 제8코만도에 맡겨졌으며, 습격은 1941년 7월 17일 밤부터 18일 새벽 사이에 감행하기로 했다.

치밀하게 짜인 작전 계획

작전 계획은 인도 제18기병연대가 양동 공격을 감행해 이탈리아군의 주의를 완전히 끌어모으고, 그틈에 코만도가 최대한 방해받지 않고 적진으로 진입하는 구조였다. 습격 임무는 폭파 특기를 지닌 소수의 호주 공병의 지원을 받는 43명 규모의 코만도 부대가 수행했으며, 지휘는 제8코만도의 마이클 켈리(Michael Kelly) 대위가 맡았다.

나머지 장교로는 던(Dunne) 대위와 루이스(Lewis) 중위가 참여했다. 장교들과 약 절반의 코만도는 톰슨 기관단총으로 무장했고, 나머지는 리-엔필드 소총을 소지했다. 소총수들은 총검을 미리 장착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모든 대원이 수류탄을 휴대했다.
코만도는 적의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적진에 잠입한 뒤, 이탈리아군의 후방으로 우회하여 남쪽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계획이었다.

실행, 그리고 압도적인 결과

코만도는 7월 17일 밤 11시 영국군 진지를 출발했고, 실제로 발각되지 않은 채 이탈리아군 진지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근접 후 그들은 멈춰 선 채 18일 오전 1시에 시작될 제18기병연대의 공격을 기다렸다. 과연 약속된 순간 기병들이 일제히 돌진해 나왔고, 이탈리아군은 온 신경을 그들에게 쏟아부었다. 이탈리아군의 기관총들이 인도군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개시하는 동안, 코만도는 '두 개의 스피리아'의 이탈리아 진지 약 25미터까지 육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이탈리아군이 그들을 발견하고 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코만도는 당황하지 않았을은커녕 오히려 즉각 반격에 나섰고, 단 4분 만에 방어 중이던 이탈리아군을 완전히 무력화했다! 이어 호주 공병들이 코만도의 엄호 아래 전진해 휴대한 폭발물 설치에 착수했다. 이탈리아 지원 포병이 상황을 인지해 '두 개의 스피리아'에 포격을 가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 작전은 15분 이내에 끝내야 했다.

곧 모든 임무가 종료되었고, 영국군은 부상자 5명 전원을 업고 자신들의 진지로 철수를 시작했다. 이탈리아군 진지에서 불과 100미터 지점을 지날 때쯤 이탈리아 포병이야말로 포격을 개시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코만도와 공병들은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격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이탈리아군의 탄약고와 다수의 박격포가 폭파당한 것이다. 코만도는 자신들의 진지로 안전하게 복귀했다. 부상자 중 한 명인 상병 존 에드워드(John Edward)는 훗날 부상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탈리아군은 스스로 인정했듯이 200명의 전사자와 막대한 부상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