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저작은 놀랄 만큼 많은 분량이 우리 시대까지 전해졌으며, 후기 다른 철학자들의 저작보다 훨씬 풍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플라톤의 사상과 교리를 전부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답은 의외로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플라톤의 이론을 언급하는 일부 고대 문헌에서 드러나는 내용이 정작 그의 저서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플라톤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은 다름 아닌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 발견됩니다.

수세기 동안 이 문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초, 학자들이 아테네 철학자의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전해지는 저작들 속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플라톤은 평생에 걸쳐 문자를 통한 지식 전달을 비판해왔습니다. 그의 눈에 글로 쓰인 지식은 결함이 많고 비효율적이며, 구두 전달보다 열등한 것이었습니다.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그는 왜 자신의 이론을 글로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일곱 번째 편지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플라톤의 편지 18통(그중 5통은 위작으로 간주됨) 가운데, 전문가들이 진위에 대해 가장 큰 합의에 도달한 유일한 편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철학자가 남긴 편지 중 가장 긴 이 글은 폭군 디오니시우스 장로와 소 디오니시우스 치세에 시라쿠사에 머물렀던 경험을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윤리적 교리의 일부를 드러냅니다. 집필 연대는 기원전 353년경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의 진정한 핵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일반 대중을 위한 가르침(기록된 저작)과 입문자만을 위한 가르침(기록되지 않은 교설)이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에게 가장 깊은 진실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식은 언어적 묘사와 감각적 지각의 결합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지식의 대상에 도달하려면 먼저 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플라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지한 사람이라면 책이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진정성 있는 철학적 교리를 가르치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다만 이견도 존재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플라톤이 강연 선에 관하여에서 이 지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고 봅니다. 그 내용은 아리스톡세노스, 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드로스, 스페우시포스, 크세노크라테스 등 당시 그의 제자이자 목격자들에 의해 수집되어 전승되었습니다. 문제는 플라톤이 자신의 주장을 주로 수학에 근거를 두었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대다수 청중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어쨌든 핵심 쟁점은 명확합니다. 그 편지가 진짜인가,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교설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플라톤의 진정한 철학을 담은 별도의 가르침이 실재했다면, 우리에게 전해진 저작들의 권위와 타당성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조차 이 문제에 대해선 어느 쪽에도 쉽게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