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12월,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파키스탄 계획을 옹호하며 독특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대가족 안에서 두 형제가 더 이상 함께 살기 어렵다면 재산을 나눈 뒤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처럼, 인도의 분할 역시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1944년 간디가 바로 이 논리를 제시했을 때, 진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슬림이 중앙 정부 체제 아래 놓이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디가 제시한 조건부 수용안
1944년 9월, 간디는 인도를 '두 개 국가'로 규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도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보았고, 북서부와 북동부 지역에서 다수를 이루는 무슬림 구성원들이 따로 살기를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간디는 다음과 같은 조건 아래 무슬림 연맹의 라호르 제안을 수용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는 선거 등 어떤 방법으로든 확인할 수 있다.
- 찬성 결과가 나오면, 인도가 독립한 후 그 지역들은 별개의 독립 국가로 조직된다.
- 대외 방위, 국내 교통·통신, 수출입 등 공동 사안은 조약을 통해 규율한다.
요컨대 간디는 라호르 결의안이 실현될 경우 생겨날 수 있는 체제 자체는 수용하면서도, 그 이론적 근거인 '두 국가론'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나는 간디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무렵 진나의 라호르 결의안 해석에는 이미 변화가 일어난 뒤였습니다.
그는 이제 파키스탄에 속하는 북동부와 북서부 지역을 서로 다른 두 영토로 보기 시작했고, 이 두 지역을 각각 별개의 독립 국가로 만드는 데 반대했습니다. 또한 분할 이후의 중앙 체제에도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공동 협약의 책임은 양국이 각각 구성한 입헌 의회에 맡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린리스고 성명, 무슬림 연맹에 날개를 달다
인도 국민회의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워 왔습니다. 이 요구는 인도 전역은 물론 국제 무대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었고, 그 핵심은 영국 정부가 권력을 국민회의에 이양한 뒤 물러나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 연맹이 파키스탄 요구를 내세우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인도 부왕이었던 린리스고 경은 1940년 8월의 유명한 성명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인도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짊어진 현재의 책임을, 인도 국민 생활의 광범위하고 중요한 세력들로부터 지배권을 거부당한 정부에 이양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망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부왕의 이 선언은 파키스탄 요구를 내건 무슬림 연맹에 도덕적 무게감을 실어 주었습니다. 영국이 무슬림 연맹의 입장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41년, 한층 강경해진 파키스탄 요구
1941년 마드라스에서 열린 무슬림 연맹 연례 대회에서 파키스탄 요구는 더욱 힘 있게 제기되었습니다. 진나는 이 자리에서 요구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밝혔습니다.
"전인도 무슬림 연맹의 목표는 인도의 북서부와 동부 지역에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국방, 외무, 통신, 관세, 화폐와 환전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단일 중앙 정부를 둔 전인도 헌법을 원하지 않으며, 결코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